우물을 파다 떨어지면 아프다

쿵, 털썩

by 에드니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아니, 도대체 왜 떨어진 걸까?"

'찰칵'


머리로는 초고속으로 떨어진 비자 인터뷰를 복기하는데 손가락은 아무런 차질 없이 오게 된 일본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간사이와 고베를 잇는 페리에 타서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가면 안 되는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인가.


아무리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 가는 일만 남았다 생각했기에 그 허탈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비자 인터뷰 당시 가족 우대 라인을 이용해 내 앞으로 들어온 가족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인터뷰 순서가 밀렸는데 만약 원래대로 그 가족의 면접을 봤던 심사관과 인터뷰를 했다면 붙었을까.


생각보다 기대 이하였던 카레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 진짜 트럼프 때문인가. 1월에 취임했는데 2달 만에 이렇게 이민 정책에 변화가 있을 수 있는 건가? 진짜 내 잘못이 아닌 건가?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신사에서 문제없이 미국 유학을 다녀올 수 있게 해 달라는 소원을 쓰면서도 생각했다. 편안한 이미지를 주고자 팔을 앞으로 살짝 기대어 답변했는데 그것이 아니꼬웠을까. 조금 더 진중했다면 붙었을까. 아, 근데 이미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소원이 의미가 있나.


온갖 '왜'와 '만약'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비자를 시원하게 떨어져놓고도 오꼬노미야끼를 맛있게 먹고 '나마비루'를 들이켜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가면 안 되는 길을 가고자 했던 것인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간절했느냐를 물어봐야 하는 건가.



아닌데. 나는 간절했는데.




그 간절함이 배신당한 여파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무력감, 상실감, 권태감 등. 아마 모든 부정적인 미사여구를 갖다 붙였어도 맞아떨어질 감정상태였던 것 같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방법을 찾아봤다.


'불문율의 3개월'. 미국 비자를 떨어지면 재신청까지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의심을 피할 수 있다는 정보가 나왔다. 기를 쓰고 미국에 가려는 것처럼 보이면 좋지 않기 때문이라나. 유학원 블로그를 뒤져봐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꼭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비자가 거절된 후 다시 합격한 최단기간 사례가 2달 남짓이었기에.


다시 우울해졌다. 3개월이라니. 그럼에도 태연한 척하려고 했다. 꿈을 위해 3개월을 기다리지 못한다면 너는 그 꿈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아무렇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집 근처 성당을 찾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성당이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신자는 아니었으나 그냥 어디엔가 하소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때마침 신규 신자 교리 수업을 시작하는 시기라고 해서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음에 등록했다. 그리고 매주 일요일 수업에 나갔다. 백수가 된 지 4달 차였으니 할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리프레시가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수업을 담당하시는 보좌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미사 시간에 기도는 아무거나 하셔도 됩니다. 본인을 위해 기도하셔도 되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나는 미사시간에 나를 위한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저는 신자도 아니고 아닌 말로 하느님의 존재를 아직 모르겠습니다. 근데 기도하라고 하니 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하느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게 아니고 해결할 힘을 주신다고요. 그러니 저에게 문제를 해결할 힘을 주십시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결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다 한 가지가 머리에 스쳤다. - '3개월이고 나발이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 그 생각은 점점 더 커져갔다. 내가 굳이 기다려야 해? 다른 방법은 없어? 그리고 나는 어떤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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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지금 미국이 가고 싶은 거냐, 비행이 하고 싶은 거냐?'

'굳이 미국이어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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