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비행하려면 캐나다도 나쁘지 않다던데?'
처음 퇴사를 입에 담았을 때 법인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미 유학 관련 정보를 알아보면서 많이 들었던 말, 그리고 그래도 이왕 가는 거 제일 좋다는 미국에서 공부를 해보겠다는 포부로 답하며 기억 한 편에서 완전히 잊혔던 말.
꿈으로 가는 길이 완전히 막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길로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와 캐나다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했다기보단 떠밀린 느낌이었지만 '아무렴 어때'싶은 마음이었다.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아무렴 어때'싶은 마음이었다.
사람이 정말 간사하다고 했던가. 나는 캐나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함과 동시에 왜 애초에 캐나다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는가에 대해 자책하기 시작했다. 우선 미국과 환율이 말도 안 되게 차이가 났다. 그 차이는 무려 30%. 교육비 이외에도 식비, 월세를 감안했을 때 어마어마한 비용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분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선 상상도 해볼 수 없었을 '교육 종료 후 취업비자 제도'가 보장되고 하다 못해 워킹 홀리데이가 살아있는 나라이기에 교육이 다 끝나고도 캐나다에 남아 항공사 취직에 필요한 비행시간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
'이게 뭐야? 나는 그동안 도대체 뭘 알아본 거지.'
미국에만 눈이 멀어 플랜 B를 가동해 볼 생각도 못해본 것과 꿈으로 향하는 길을 면밀히 검토해보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고 후회했다. 아니, 지금 돌아보면 미국 이외에도 길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내 꿈에 A급 옷을 입혀주고 싶었을 뿐.
A급 옷, 이 생각이 얼마나 철없고 터무니없었는지는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학교 연락부터 신체검사까지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한 번 까인 경험은 나에게 멈춤을 허용하지 않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처럼 미친 추진력으로 내 꿈을 맡길 나라를 바꿨다.
6월 말경, 2주 만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학교 측과 일정이 맞지 않아 출국일은 8월로 결정되었다. 한 달 동안 생긴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다시 떠나게 된 가족 일본여행.
이번엔 삿포로였다. 저번처럼 비자도 나오지 않은 채 건방지게 떠난 여행이 아닌, 아주 겸손해진 마음가짐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찝찝한 마음 없이 시원하게 '나마비루'를 들이켜며 순간을 만끽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인터넷 강의로 비행에 필요한 이론 수업을 미리 들을 수 있다고 해서 미래에 내가 걷게 될 길을 맛보기로 했다. 영어였다. 조금 더 실감이 났다. 내가 가려는 길은 상상 이상으로 영어로 가득 찼겠구나. 하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극복할 수 있었고 극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어학원에 나를 보내시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시게 된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첫 강의는 비행기가 어떻게 날고 엔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챕터였는데 흥미롭게 집중하는 나를 보고 아예 적성에 맞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은 아니겠거니 하는 확신이 들었던 좋은 시간이었기도 하다.
이후 몇 가지 준비를 마치고 8월 1일,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여러 나라로 떠나며 여러 번 배웅을 받았지만 왜인지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찼기에 가서 실패한다면 이번이 마지막 배웅이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는지, 깊은 내면에서 더 이상의 이런 짧은 이별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어쨌든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밴쿠버로 향했고 꿈에 먼지를 털다 나온 그 '파일럿'이 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긴 비행의 끝과 함께 승무원의 안내멘트가 그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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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Vancouver International Air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