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날아보기

자신감 충전기

by 에드니

다행히도 비행은 더욱더 익숙해져 갔다.


비행기의 시동을 걸고 지상 관제소에 연락해 활주로와 레이더 식별 번호를 배정받는 교신도, 주파수를 변경해 이륙 허가를 받는 과정도, 이륙 후 공항의 관제공역을 벗어나면 주파수를 한 번 더 바꾸는 것 역시 귀와 손에 익어갔다.


다만 훈련 공역은 여전히 무서움의 공간이었다. 말 그대로 훈련을 목적으로 한 비행기들이 별도의 관제 없이 날아다니며 비상 상황을 가정한 비행 기동을 연습하는 공간이라 실제로 사고도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교관들은 만약 훈련 공역에 비행하는 학생 파일럿들이 너무 많으면 연습을 취소하고 공항으로 복귀하거나 다른 훈련 공역으로 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 기동들은 바깥 상황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수를 하늘로 올려 고도를 높이다가 일부러 속도를 잃고 비행기가 고꾸라지게 내버려 두기도 하고, 반대로 기수를 내려 비행기가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게 내버려 두기도 한다. 또한 제자리에서 급격히 회전하며 360도를 피겨스케이팅 점프처럼 도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실 공항을 떠나 훈련 공역으로 향하는 도중 보이는 비행기들의 움직임은 파리의 모습에 가깝다. 실제로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는 물체들이 수없이 하늘에 떠 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몇몇 파일럿들은 오늘 파리들 많다며 서로 디스 아닌 디스를 하기도 한다.


물론 훈련 공역에 있는 학생들도 나름의 노력은 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포지션 콜을 성실히 하는 파일럿도 있고 비행 기동을 시작하기 전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주변을 살피는 파일럿도 있다. 다만 아무리 착한 고등학생들을 한 반에 모아둬도 사고가 아예 안 날 수는 없는 것처럼 드물게 사고가 발생할 뿐이다.


그래도 여전히 옆에 교관이 있기에 심적 부담은 크지 않다. 내가 비행 기동 중 리커버리에 실패하더라도 나를 도와줄 교관, 내가 포지션 콜을 듣지 않으면 대신 들어줄 교관, 그리고 나를 어떻게든 공항에 데려다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그 정도로 교관은 학생 파일럿들에게 아주 중요한 동아줄이다.


그러다 어느날 교관이 말했다.

"근데 이제 슬슬 솔로 나가실 때가 된 것 같아요."




알고 있었다. 비행을 시작할 때엔 솔로 비행을 나가는 게 엄청 커다란 목표일뿐더러 무조건 필요한 과정 중에 하나이기에. 그럼에도 조종석에 혼자 앉게 되는 상상은 너무나도 아찔했다.


첫 번째 솔로비행이라 해봐야 대단한 건 없다. 공항을 네모난 궤적으로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것. 실 비행시간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과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혼자 해야 된다는 것이고, 이제 나를 어떤 상황에서든 구해줄 것만 같던 교관은 없다.


솔로 비행을 하는 날, 교관은 마지막으로 내 비행을 점검했다. 그리고 떨어진 OK사인.

"잘 다녀오세요. 파이팅!"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교관은 비행기에서 내렸다. 엔진이 꺼진 고요한 비행기에 나는 홀로 남겨졌다. 마지막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엔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씩 차분하게. 그리고 마침내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지상 관제소에 연락하자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나에게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사실 학생 파일럿이 첫 솔로 비행을 나가게 되면 교관은 관제탑에 그 사실을 알린다. 그렇기에 관제탑에서도 최대한 천천히, 차분하게 교신하려고 노력해 준다. 삐약거리는 새내기를 위한 따뜻한 배려다.


드디어 내 비행기는 혼자, 정말 나 혼자 탄 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갔던 그 길을 혼자 가려니 비행기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게 느껴졌다. 옆자리는 텅 비어있었지만 비행기가 움직이는 순간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는 살아 돌아와야 했다.


결국 비행기는 활주로에 도착했고, 관제탑은 나에게 이륙 허가를 내려줬다. 나는 입으로 비상 상황 매뉴얼을 달달달달 외우며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비행기는 큰 소리를 내며 움직이다 공중에 떴다. 바퀴가 활주로에서 떨어지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제 멈출 수 없다. 이제 나는 정말 혼자다. 이제는 정말 살아 돌아와야 한다.


'하던 대로 하면 돼, 하던 대로 하면 돼, 하던 대로 하면 돼.'


끝도 없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마법의 주문을 되뇌는 학생 파일럿이 조종하는 비행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비어있는 옆자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맞게 가고 있는지, 그리고 비행기엔 이상이 없는지 계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지정 고도에 올라가자 왼편에 보이는 공항을 내려다보며 나는 관제탑을 호출했다.


"관제탑, 다운 윈드에 있습니다. 착륙 요청합니다."

"착륙 순서 1번입니다. 착륙 허가합니다."


1번이다. 아무 걱정 없이 착륙하면 된다. 첫 솔로 비행일 때엔 대부분 1번을 준다고 들었다. 2번이나 3번이라면 다른 비행기와 충돌하지 않게 조금 더 큰 궤적을 돌며 비행해야 하는데 첫 솔로 비행에 그걸 고려하지 않아도 됐으니 너무나 안심이 됐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첫 솔로 비행은 어느덧 막바지에 들어섰다. 마지막 선회를 마치자 활주로가 눈앞에 들어왔다. 마지막 연습 때까지 착륙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었던 나는 그럼에도 차분하게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700피트 통과'

'400피트 통과'

'착륙지점 확인'

'200피트 통과'

'플레어 준비'

'플레어'

.

.

'터치 다운'


바퀴가 끼긱소리를 내며 활주로에 닿았다. 곧이어 들려오는 관제탑의 교신.


"B 유도로로 나가서 지상 관제소 컨택하세요. 첫 번째 솔로 비행 축하합니다."




어릴 때 자전거 보조바퀴를 처음 뗄 때엔 이것보다 더 기뻤을까? 어린 마음에 두 발 자전거를 처음으로 운전할 수 있게 됐을 때의 그 기쁨. 그건 더욱 컸을까? 자전거보다는 몇 배는 큰 비행기를 혼자 처음으로 착륙시킨 뒤 유도로로 빠져나가며 생각했다. 곧이어 혼자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까마득하다는 것도 곧바로 깨달았다.


어렸을 땐 분명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하는 성격이었다. 7살 때엔 인라인스케이트 만화에 나오는 회전 기술을 해보겠다고 의기양양하게 시도하다 넘어지며 벤치에 눈썹 부위를 부딪혀 찢어먹었다. 일요일이었던지라 급하게 응급실에 가서 꿰매는 바람에 부딪힌 부위엔 아직도 눈썹이 자라지 않은 채 흉터가 남아있다.


이외에도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다가 '슈퍼히어로 랜딩'을 해보겠다며 뛰어내렸는데 무릎에 턱을 부딪혀 혀를 씹는 바람에 곧장 병원으로 가 꿰맨 적도 있고, 빙판길에 자전거로 내리막 커브길을 빠르게 빠져나가보겠다고 했다가 넘어져 무릎을 다 갉아먹은 적도 있다. 그때엔 해낼 거라는 기대는 둘째치고 시도해 보는 게 멋있는 거라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나이가 들며 사라졌었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신중함을 가장한 두려움. 도전하는 것은 가장 잃고 싶지 않은 덕목이었음에도 쉽사리 지켜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 여기며 비행을 시도했고, 실제로 그 결실을 맺으니 순간의 감정만큼은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 흥분에 휩싸였던 것 같다.


이 날 내가 해낸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별 거 아니다. 어떻게 보면 비행 여정 중 1%도 나아갔다고 할 수도 없는 아주 초기의 과정이다. 그러나 두 발 자전거를 언제 처음 탔었는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스쿠터와 오토바이를 능숙하게 타고 자동차 운전도 거뜬히 해내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첫 솔로 비행은 나에게 커다란 도약임에 틀림없다. 암스트롱이 달에 찍은 발자국처럼.


생각과 환희와 기쁨이 가득찬 채로 주기장으로 돌아와 엔진을 끄고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교관에게 말했다.

"비행 시작해 보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내 비행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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