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긴 뜨는 거지요?

쨍하고 뜬다면서요.

by 에드니

좋은 신호의 연속이었다.


긴장과 땀에 젖은 첫 번째 솔로 비행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솔로비행까지 마쳤다. 두 번째 솔로는 공항을 세 바퀴, 세 번째 솔로는 공항을 다섯 바퀴 돌면 되는 이 역시도 아주 단순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나의 비행 자존감 측면에선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이 하면 할수록 착륙에 자신감도 생기고 무엇보다 혼자 하는 비행이 이제는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익숙해진 옆자리를 힐끗 보며 '혼자 비행하는 나 자신, 조금 멋있을지도?'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공항을 벗어나 훈련 공역까지 나가는 로컬 솔로 비행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행 기동을 굳이 연습하지 않아도 좋으니 마음 편하게 혼자 비행하다 돌아오라는 교관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긴장 모드로 돌입했지만 이번엔 엄청나게 큰 부담감이 나를 짓누르지는 않았다.


익숙하게 주파수를 바꾸며 훈련 공역에 들어선 나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아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손톱보다 작게 보이는 집들과 미니어처마냥 움직이는 차들이 내 고도를 새삼 실감케 했다. 비행을 할 때마다 느끼지만 할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감각들이었다.


보통 솔로 비행을 하기까지가 제일 지루하고 어려운 시간들이라고들 한다. 준비해야 할 서류들과 통과해야 할 이론 시험들도 많고 무엇보다 비행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감사하게도 그 큰 산을 하나 넘었고 홀로 비행을 하고 있는 이 순간, 앞으로도 이렇게 순탄히 비행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보통 비행 예약을 잡으면 예약 확정 메일이 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메일이 또 한 통 오길래 교관이 예약을 새로 잡았나 했다. 그러나 메일을 열어보자 비행이 취소됐다는 메시지가 떠있었다. 사유는 기상 악화.


처음으로 취소당한 비행. 밴쿠버는 겨울이 다가올수록 비행이 어렵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비가 매일같이 내리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보통 비는 많은 구름을 동반하고 낮게 떠 있기 때문에 비행하는 입장에선 시야확보가 어렵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야에 의존하는 학생 파일럿들 기준이다.


이제 10월인데, 아직 겨울이 아닌데, 일시적인 상황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비행 취소 메일은 연달아 날아오기 시작했다. 취소, 취소, 취소. 그리고 밴쿠버 하늘은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구멍이 뚫렸다기보단 하늘에 금이 간 듯, 많이는 아니더라도 아주 꾸준히, 정말 꾸준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우스메이트가 언제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겨울을 지나 건강검진을 받으면 비타민 D 부족 판정을 받는다고. 해가 어쩌다 한 번 뜨면 일광 건조하듯이 햇빛에 앉아 널브러져 있는다고. 이런 것 가지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가도 마음 한 편에는 설마 그 정도 까지겠어하는 생각도 공존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해가 그 정도로 뜨지 않는 하늘은 처음 봤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도 아침인 줄 모르고 점심이 되었다 하더라도 금방 저녁이 될 것만 같은 그 어두컴컴한 흐린 날씨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2주째 그리고 3주가 되도록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모를 이유로 축축 처지고 움직이기 싫어지고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어졌다. 여름엔 그렇게 뜨거워 도망치고 싶었던 해를 이렇게나 열렬히 원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 해야. 이제 그만 돌아와 주면 안 되겠니. 정신줄을 놓고 하우스메이트들과 이상한 소리나 해내며 시간을 보냈다.


진짜 문제는 비행에 있었다. 아직 비행이 완전히 손에 익지 않은 나는 서서히 그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실제로 학교 규정상 2주 이상 비행하지 않은 학생 파일럿은 교관과 다시 체크 비행을 해야 했다. 예년보다 일찍 내리는 비 폭탄에 내 훈련이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워낙 걱정이 많은 편인 나는 생각을 아주 크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비자도 떨어지고 비행할 수 있는 길을 찾아왔는데 왜 작년보다 훨씬 일찍 비가 내려 훈련을 방해하는 걸까. 한겨울엔 비행이 힘드니 그렇다 쳐도 지금은 10월 밖에 안 됐는데 왜 이렇게 비가 멈추지 않는 걸까. 진짜 내가 비행하기를 원치 않나.


그러다 내가 살아온 날들 속 어려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싱가포르 취직 시장에 뛰어들 때였다. 7월에 싱가포르로 들어간 나는 9월이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했었다. 숙소가 비싸다 보니 캡슐호텔을 전전하며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다. 학사일정에 따라 취직해야 했기에 시간에 쫓겨 직장을 구하느라 더욱더 악몽 같았던 날들이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직장을 찾을 수 있었고 해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전 미국 학생 비자가 거절당했을 때였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꿈을 이제 다시 찾아 나아가려고 하는데 그 시작부터 그 꿈이 짓밟혔던 일. 모든 의욕을 잃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던 그 날들. 다행히 위기를 기회 삼아 극복하고 캐나다로 왔지만 그때의 감정은 앞으로도 쉬이 잊히지 않는, 아주 또렷이 내 기억 한 편에 각인될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혹시 다른 어려움이 더 있나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어려움은 없었다. 인생은 내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갔고 길이 보이면 그 길로 걸어갔다. 인생에 있어서 퀘스트가 생기면 그 퀘스트를 해결했다. 문제라고 할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다 나는 '그럼 왜 저런 어려움들을 겪었던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답은 간단했다.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부딪혔던 어려움.'


나는 해외 취업을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싱가포르로 향했다. 그렇게 시도했고 그렇게 여러 번 좌절도 했었다. 그리고 해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나기로 했고 거절당했다. 좌절하다 다른 길을 찾아봤고 캐나다로 떠나왔다. 그리고 이제 비행을 하고 있다.


사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말들이다. 거의 모든 일에 적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근육통은 운동을 하지 않으면 없는 고통이다. 새로운 걸 배울 때 느끼는 답답함과 번뇌는 안 배우면 그만이다. 새해맞이 등산을 할 때 죽을 것 같이 힘들고 발가락이 잘릴 것 같이 시린 고통은 산을 오르지 않으면 없는 고통이다. 로또에 매번 당첨이 안될지언정 사지 않으면 1등이 될 확률은 0이다.


나는 시도했기 때문에 좌절했고 지금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날씨에 의해 내 길이 막히고 있는 것이었다. 전처럼 초조하진 않았다. 그렇게 어른들 말 틀린 것 하나 없다며 스스로를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정말 어른들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



내 캐나다 학생 비자가 거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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