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 데 또 맞기

아야

by 에드니

제일 치사하다.


사람들은 벌칙에 걸렸을 때 맞은 곳을 또 맞으면 왜 맞은 곳을 또 때리냐며 가끔 진심으로 화내기도 한다. 심지어 링 위에서라면 파이터들은 그대로 무너지기도 한다. 치사한 방법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녹다운시키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아픈 방법이다.


미국에서 비자가 거절되어 찾아온 캐나다. 학교를 다니며 학생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는 말에 서둘러 여행 비자로 넘어왔고 비행을 시작했다. 기어코 꿈을 쫓아와 비행을 시작했다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찬 여정은 캐나다 비자 결과를 받고 처참이 부서졌다. 말 그대로 녹다운이었다.


남들은 4-6주 만에 잘도 받는 학생비자를, 실제로 학교에 나와 똑같은 시기에 신청한 학생도 4주 만에 받았던 그 학생비자를 나는 3개월 동안 기다렸다. 그랬음에도 나의 도피처이자 유일한 동아줄이었던 캐나다는 나에게 비자 주기를 거부했다.


맞은 데를 또 맞았다. 예삿일도 아니고 내가 이 꿈을 계속 꿔도 되는지 그 여부를 송두리째 결정할 비자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다. 같은 나라도 아니고 각각 다른 나라에서 뺨을 두 번이나 맞았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 가서 눈 흘기고 소리친다는데 도대체 나는 어디로 가야 했을까.


그러나 제일 무서웠던 건 포기라는 감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고개를 들었다는 것이다.


'할 만큼 했다. 비자가 안된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너 두 번이나 떨어졌잖아. 앞으로 더 이상 갈 곳이나 있을 것 같아? 해봤자 또 떨어지겠지. 내 말 들리면서 왜 모르는 척 해?'


포기는 계속 속삭였다. 패배감과 상실감을 먹이 삼아 무럭무럭 자라나는 녀석의 목소리는 금세 커져있었다. 그러나 나름 맷집이 생긴 나도 그대로 쓰러지지만은 않았다. 한 번 겪어본 상황이기에 오히려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미국 비자가 거절됐을 때처럼 감정을 추스르는데 3개월씩이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때 얻은 깨달음으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왜지? 도대체 이유가 뭘까? 나는 거절 사유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입학 허가서에 명시된 항공 신체 검사서를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거절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학교에서 만난 그 누구도 해당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고 나와 같은 시기에 비자를 신청했던 학생도 해당 서류는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자 신청 시스템 상에 저 신체 검사서를 업로드하는 란은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신체 검사는 한국에서 받아왔기 때문에 올릴 수 있었다면 분명히 올렸을 것이었다.


또한 캐나다의 비자 결과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합격, 추가 서류 제출 요망 그리고 거절이다. 저 사유가 합리적이라고 구태여 가정하더라도 내가 받았어야 할 결과는 '서류를 추가 제출하시오'가 되는 것이 맞는 처사였다.


흥분에 휩싸여 대처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거절 사유서를 다시 읽어보니 맞지 않는 문장들이 여럿 발견되기도 했다. 학생 비자가 아니라 취업 비자가 거절됐다는 둥, 지금은 2025년인데 내 신청서가 2023년에 접수되었다는 둥 오탈자인지 혹은 실수인지 모를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나는 곧바로 재심 요청서를 작성했다. 물론 말투는 매우 공손했다. 다른 학생 얘기도 입에 꺼내지 않았다. 나는 절차적 정당성을 물고 늘어졌다. 시스템 상에 업로드하는 칸이 없었고 해당 사유라면 이미 비자를 신청했던 그 순간에도 서류는 준비되어 있었으니 첨부된 신체 검사서를 참고해 달라며 아주 공손하고도 공손하게, 이보다 더 공손할 수는 없을 만큼 공손하게 재고를 요청했다.


그리고 내 비자 탈락 소식을 들은 학교 운영팀장도 나를 불러 자신이 알고 있는 해결책들을 모두 일러주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지역구 의원이 비자 관련 건의사항을 처리해 줄 수도 있으니 연락을 해보든지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머리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원이 외국인의 비자 거절에 대해 상담을 해준다는 말인데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한 번 찾아뵙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으로 메일을 보내자 생각 외로 금방 답장이 왔다.


'당신이 거주하는 지역은 다른 의원님의 관할 구역입니다. 그쪽으로 연락해 보시길 바랍니다.'


갑을병정과 같은 지역구가 캐나다에도 있나 생각하면서 메일을 끝까지 읽어보니 발신인은 의원 보좌관이었다. 그래, 의원이 직접 케이스를 들여다볼리는 없겠지 싶었지만 상관없었다. 내 지역을 관할하는 의원의 보좌관에게서도 메일이 올 것임을 알게 됐으니. 그래서 서둘러 같은 내용의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당 의원은 보좌관을 두지 않는 건지, 아니면 내가 원래 생각했던 대로 의원이 이방인의 비자 거절 케이스를 들여다보지 않는 건지 아무리 기다려도 메일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건 재심 요청을 보냈던 캐나다 이민국도 마찬가지였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다 끝내니 공허함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이제는 정말 끝인 건가. 포기가 속삭였던 대로 이제는 모든 걸 받아들여야 하나. 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생각을 마쳤을 때에도 내 비자 거절 사태에 대한 답장은 그 어느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다 어느 날 내 사정을 알고 있는 친구에게 위로의 문자를 받았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고마웠다. 조금은 상투적일지라도 나에게 저런 말을 건네주는 것 자체가. 그러나 저 말 뒤에 붙은 문장 하나가 나에게 큰 파동을 일으켰다.


'포기하지 않는 네가 멋있는 거야.'



'멋있으려면 포기하면 안 돼.'


정말 우습게도 저 문장을 읽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선 웃음이 살짝 터져 나오더니 마음속 모든 게 리셋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해 보며 이 자리에 온 나 스스로가 조금은 대견하게 느껴졌다. 평소에 저런 말을 하지 않는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기에 그 효과가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 졌다. 비자 때문에 또 지기 싫었다. 그 종이 쪼가리 때문에 멈추기 싫었다. 내가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캐나다로 넘어와 처음 비행을 하며 설렜던 그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 비행에 익숙해지고 비행이 일상이 된 나날들을 모두 버린 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링 위에 선 파이터가 된 기분으로 맞서 싸우기로 했다. 맞은 곳을 또 맞아서 아프긴 너무 아프지만 그렇다고 흰 수건을 던지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KO를 당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추방되지 않았다. 소송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진 않지만 이민국을 포함한 여러 곳곳에서 소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전 10화해가 뜨긴 뜨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