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친구가 필요해요

그럼요

by 에드니

비행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함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은 여전히 따뜻했고 익숙했다. 인천공항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눈에 보이는 한글들과 나와 똑같이 생긴 공항 직원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여권을 가진 이들을 한 없이 반겨주는 내국인 전용 게이트가 집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 양방향에서 얻어맞은 비자 거절에 대한 여파는 고향에 돌아왔다는 익숙함에 자꾸만 돌을 던졌다.


'한국 좋긴 좋네. 근데 이런 식으로 오고 싶었던 건 아닌데. 나는 왜 여기까지 왔을까?'


이민국 그리고 지역구 의원에게 보낸 항의와 문의에 대한 답장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1주일 전 도착했다. 이민국에서는 추가 서류가 접수되었으니 확인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뿐이었고 지역구 의원 측에서는 이민국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할 순 없지만 보좌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재신청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수신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소식을 받았는데, 한 친구가 인도 지역 비자 심사관에게 알음알음 알아본 내용이었다. 요즘 학생비자 거절률이 올라가는 편이고 심사관의 재량도 들어가기 때문에 그냥 운이 없었던 것 같다며 심사관 입장에서도 신청자가 캐나다 영외에 있는 편이 훨씬 수월하니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비자 신청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의기양양 자격증을 들고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남겨두었던 비행기 티켓의 일정을 다급하게 변경했다.




두 번의 실패 후 나는 왜 비자 전문가가 있는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기에 이번엔 그런 전문가에게 내 비자 진행을 맡기기로 했다.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유학센터에 들러 필요한 서류들을 모두 제공했다. 바로 재신청을 진행할 테니 소식을 기다려달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나는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집. 귀국하고서 처음 본 얼굴이 유학센터 직원이라 무안하고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서야 마침내 집에 온 게 실감이 났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온 집은 그럼에도 나에게 익숙한 품을 내어주었다.


때 아닌 귀국의 충격도 잠시 나는 한국생활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원래 한국인이니 익숙해질 게 있었을까 싶지만 캐나다에선 꿈도 못 꿀 배달을 시켜 먹는다거나 먹기 쉽지 않은 날 음식들을 무섭게 먹어치우는 일은 새삼스러운 신선함을 선사했다.


한국에 들어온 김에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기 시작했다. 전 직장 동료, 오랫동안 연을 이어가고 있는 군대 동기 그리고 타국에서 힘듦을 함께 했던 친구까지. 비자 소식을 덤덤하게 전하고 우리는 그동안 쌓아뒀던 이야기보따리들을 풀기 시작했다.


어느덧 아빠가 되어있는 친한 형님과 결혼식을 치르는 군대 동기,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와 인생의 2막을 살아가고 있는 전 직장 상사분까지. 나 역시도 나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 모두들 기쁜 소식을 안고 잘들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기쁜 마음으로 술 한잔 하며 모임들을 이어나갔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웃음으로 가득한 하루들을 보내니 내면의 힘듦은 잠시 잊힌 듯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과 술 한잔을 걸친 형님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아빠가 된 그 형님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는 다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너 저번에 봤을 때 표정이 너무 안 좋더라. 이야기를 더 깊게 물어보기 미안할 정도로. 그래서 걱정돼서 전화해 봤다."




묵묵히 힘듦을 견디는 것. 그게 어른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모두들 각자의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있고 극복하든 못하든 그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것.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아픔을 건드리는 드라마나 노래가 사랑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숨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힘든 일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줄 아는 어른이 된 줄 알았다. 나 하나 힘들다고 오랜만에 생긴 기분 좋은 자리를 감정의 성토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성공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형님의 말 한마디는 내 감정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저번에 볼 때 함께 만났던 다른 외국인 친구가 전화를 건네받아 다시금 괜찮은지 물었다. 왜 더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추궁하기도 했다. 나는 괜한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오랜만에 만나 기분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하고 싶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랬더니 친구가 대답했다.

"우리가 그러려고 친구 하는 거 아니야?"




친구의 의미를 나는 아직도 잘 알지 못한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교우관계가 그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성격상 멀리 떨어진 친구를 잘 챙기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더 혼자서도 잘 살아보려 노력해 왔다. 그런데 저 말은 맞는 말이었다. 우린 서로의 기쁨과 평안을 위해 시간과 공간을 기꺼이 뛰어넘어 만나왔었다.


이번 일로 한 가지 느낀 건 어른도 친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그래왔듯 일기를 써가며 혼자서도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기 위한 노력도 분명히 필요하지만 얼굴 보고 만나 2-3시간 말 같지도 않은 수다를 떨며 겪고 있는 힘든 감정의 부스러기들을 함께 털어내는 일. 그 효과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


그 뒤로 나는 한 번 더 형님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번엔 가감 없이 내 기분을 모두 쏟아냈다. 육두문자도 섞였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은 들어줬고 나는 털어냈다.


생각해 보면 남들이 나에게 무언가 이야기할 때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그리 무겁지 않았던 것 같다. 나쁘게 말하면 내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힘든 것을 말하고 난 그들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건넨 이야기가 그 사람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와닿길 바라는 게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에 애초에 그리 벅찰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 건넨 위로는 내가 겪고 있는 어려운 시간들을 뚫고 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의 일부가 되었다. 진흙에 처박힌 차를 빼낼 때 한 명이 미는 것보단 두 명이 미는 게 확실히 효과가 있듯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때엔 친구들을 먼저 찾아가 볼 생각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이 힘들어 보일 때 먼저 전화를 걸어 걱정을 건넬 줄 아는 '친구하고 싶은 어른'이 되어보려고 한다.



이전 11화맞은 데 또 맞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