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나쁘든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하며 때 아닌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도 비자는 소식이 없었다.
유학원에 주기적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 물어봤지만 캐나다도 연말연시라 행정 처리가 늦을 수밖에 없으니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뇔 뿐이었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내 머리는 그 이해를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이런 일을 두 번이나 겪어야 하는가.
마음에 한 번 새겨진 억울함이라는 감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의 일을 겪으며 터득하게 된 비기,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면 된다.'는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필기공부라도 해야겠다고 노트북 앞에 앉는 날에는 여지없이 울화가 치밀어올라 노트북을 다시 닫는 게 일상이 되었다.
캐나다에서 나를 열렬히 응원해 주던 친구도 점점 회의적인 주변 반응들을 전달해 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내가 정말 돌아오길 바라지만 이렇게나 소식이 없다면 정말 힘들 수도 있겠다 하며 체념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생각은 나도 하기 시작했던 찰나였기에 그들의 생각이 무리는 아니라며 동의했다.
나날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내가 평소 자주 듣는 노래들을 완벽하게 따라 부르려고 애쓰고 나면 걱정 따위는 잊게 되는 경험을 구매할 수 있는 곳. 가격도 30분에 2천 원이기에 평소에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노래로도 잊히지 않을 우울감이었는지 자꾸 한숨을 쉬며 슬픈 노래들만 찾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참 쉽지 않다 생각하던 찰나 같은 가사의 노래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디지몬 어드벤처 세대들의 명곡. 전영호의 Butter-Fly였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나를 허락해 준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니야.
그렇다. 세상은 애초에 그런 곳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무언가 주어지는, 그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하나 가지기에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곳이 이 세상이란 곳이었다. 그리고 쉽게 주어지는 것을 가만히 받기만 해도 안 되는 역설적인 곳이 바로 이 세상이란 곳이었다.
어른들이 이야기했었다. 학교 생활이 아무리 힘든 것 같아도 밖은 전쟁이라고.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 바로 이 사회라는 곳이라고. 나는 운 좋게 지금까지 그 전쟁을 피해왔을 뿐이었다. 대학 시절, 해외 취업이라는 기회가 눈앞에 있었고 그걸 가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 모든 걸 내려놓고 파일럿이 되겠다며 다시 전장에 뛰어들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감정이란 얼마나 우스운지 무슨 생각을 해도 바뀌지 않던 마음속 억울함과 분노는 노래 한 구절에 모두 녹아내렸다.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는 잊힌 교훈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비자가 지연되면서 시간이 남아돌았기에 나는 기회가 왔을 때 인연들을 많이 만나두기로 했다. 몇몇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마지막으로 찾아뵌 사람은 전 직장 상사 분이었다. 어딘가 독특하시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잘해주시고 덤덤하게 세상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주시는 분이었다.
그렇게 예약해 주신 식당으로 가서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눴다. 친구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된 이후이기도 했고, 명곡 가수에게 가사 한 줄로 위로받은 다음이었기에 이전 뵈었을 때보단 훨씬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설 연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서로 덕담을 나누며 자리를 이어가다 장난스레 말을 건네셨다.
'그냥 설까지 있다 간다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있어라. 그럼 비자 나온다.'
'넵, 저도 그냥 이제는 마음 편하게 있으려고 합니다.'
대답했다.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나는 미련 없이 그러겠다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마쳤다.
그리고 3일 뒤, 비자가 나왔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우주로 향하는 주인공의 딸 이름은 머피다. 머피는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면 아빠에게 달려가 자신의 이름이 머피이기 때문에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며 우울해한다. 그러자 아빠는 그런 게 아니라며 타이른다.
'머피의 법칙은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게 아니야.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뜻이란다.'
내가 마음을 편하게 먹었기에 비자가 나왔을 리는 만무했다. 내가 우울감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사람들과 만나며 분노를 분출할 때에도 지구 반대편 캐나다에선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심사관들이 내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한 번의 거절 이력이 있었기에 조금 더 꼼꼼하게 살펴봤을 것이고, 캐나다에서도 이미 한 번 거절당했기 때문에 더더욱 꼼꼼하게 살폈을 것이다. 케이스가 복잡하다 보니 하급 기관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2차 심사 기관으로 보냈을 것이다.
2차 심사 기관에서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을 것이고 결국 수도 오타와에 있는 최종 심사 기관으로 내 서류를 넘겼을 것이다. 내 비자 신청서는 그곳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출근했을 심사관으로부터 승인 도장을 받았다.
나와는 별개로 어떻게든 일어났을 일. 비자 승인서를 읽으며 그동안 떠올렸던 모든 안 좋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이불킥을 갈겼다.
'조금만 더 차분하게 기다려볼걸.'
앞으로도 시련이 닥쳤을 때 이 날을 떠올리며 덤덤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당장 내가 죽겠는데 영화에 나오는 새롭게 해석된 머피의 법칙을 떠올릴 시간이 있을지도 분명하지 않고. 다만 짧은 인생 살아오며 느낀 건 마음 근육도 커진다는 것이다.
내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근육통이 되어 내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할 것이고, 앞으로도 힘든 시간을 겪게 되었을 때 단단해진 마음 근육은 내가 받게 될 고통을 최대한 줄여줄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마음 근육은 이 사건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학생 비자 신청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많이 알게 되었으니 남들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설 연휴 전, 단단해진 마음과 함께 캐나다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