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고 2개나 주는 건가요?
그렇게 정확히 두 달 만에 나는 밴쿠버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 가지 관문이 더 남아있었는데 ‘진짜 비자’를 내 손에 넣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받아온 건 ‘비자 승인서’. 그 말은 즉슨, 공항 내 입국 비자 센터로 가서 승인서를 제출하고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문제가 유학원에서 일러주기를, 아주 깐깐한 심사관을 만나면 이것저것 캐묻고 비자를 최대한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마음 졸이고도 또 하나의 관문을 지나야 한다니 걱정부터 됐지만 나의 유일한 선택지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뿐이었다.
터벅터벅 걸어 긴장된 상태로 입국 비자 센터에 도착했다. 마침 짐을 찾는 곳 바로 앞에 있길래 짐을 기다리면서 동태를 살펴보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금 들어갔다간 집중 심사를 당하겠는데…?’
생각하던 찰나, 한국인처럼 보이는 한 분이 비자 센터로 들어갔다. 어떻게 되는지 유심히 지켜봤는데 5분도 되지 않아 손에 비자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두 눈을 씻고 봐도 그분의 손에 들린 건 비자였다. 분홍색종이에 인쇄된 비자.
나도 그냥 돌격하기로 했다. 짐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곧장 비자센터로 걸어 들어갔다. 그랬더니 풍채 좋은 남자 심사관 한 분이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해당 창구로 향했다. 심사관 이름을 보아하니 베트남을 적으로 두신 분 같았다.
승인서를 들이밀고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 심사관이 입을 열었다.
‘비자 출력해 올게. 뒤에 의자에 앉아서 기다려줄래?’ - 뭐야, 끝이야?
반신반의하며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를 2분. 심사관이 내 한국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비자를 손에 쥐었다. ‘진짜 비자.’
비자를 쥐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하우스메이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달 만에 만나는 거라 어색함과 익숙함 그 사이, 어정쩡한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밴쿠버의 공기는 무척이나 맑았다. 애초에 미세먼지가 없는지라 원래도 맑았겠지만 가방에 들어있는 비자가 특별히 나를 위해 공기청정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맑음이었다.
장장 6개월이나 속을 썩인 비자를 들고 캐나다 땅에 발을 디디자 모든 게 새로웠다. 걷는 것도 뭔가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기고, 운전도 더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은 기분. ‘속이 시원하다’라는 표현을 몸으로 나타내면 볼 수 있는 표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3일 정도의 적응기간을 갖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어색해하는 머리와 달리 손은 비교적 익숙하게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두 달 만에 듣는 엔진 소리. 다시 듣게 되어 참 반갑다는 생각도 잠시 그동안 없어진 감을 찾느라 나는 고군분투해야 했다.
잘 되던 기동들도 잘 되지 않았고 특히나 착륙할 때의 감을 많이 잃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비자를 받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가니 내 이름으로 된 우편 하나가 와 있었다.
발신인은 에드먼턴 이민국이었다. 1차 비자 심사 기관. 나는 그 봉투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비자가 하나 또 나왔네.’
사실 출국 3일 전, 이민국으로부터 메일 하나가 왔다. 기존에 거절된 비자에 대한 재심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또 하나의 메일이 도착했다.
‘비자가 승인되었습니다. 캐나다 내 주소로 비자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유학원에 바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유학원에서 돌아온 답변은 재신청한 비자가 상급 기관인 오타와에서 승인됐고 캐나다에 가면 먼저 받게 될 비자도 재신청 비자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재심 비자는 자동으로 취소되겠거니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하나의 비자가 내 눈앞에 도착해 있는 것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비자가 나는 이제 2개나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유학원이 추측한 재심 비자의 승인 이유를 듣고 나는 헛웃음을 뱉었다. 막상 재심을 해보니 문제가 없었고, 이미 상급 심사기관에서 승인을 해버린 케이스라 자신들이 거절 의견을 유지하면 문제가 될까 싶어 서둘러 승인으로 전환을 해버린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내가 이겼다.’
비자가 거절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거절 사유가 왜 터무니없는지 조목조목 따져 몇 차례나 항의를 했고, 지역구 의원 사무실에 메일을 보내 도와달라고 도움도 요청했었다. 그러다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 한국에서 재신청을 진행했다.
그래서 비자를 손에 넣었고, 캐나다에 돌아왔고 그리고 나를 까버린 심사기관에서 나에게 다시 비자를 보내주었다.
비자를 2개 받아서 기분이 풀린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받았기에, 내 비자가 부당하게 거절당했다는 것을 증명해 냈기에 나는 기분 좋게 해프닝으로 이 일을 마무리지었다.
배송된 비자는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전리품처럼 내 책상 한 편에 놓아두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는 저 봉투를 보며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의 비자 해프닝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 않나 싶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심사관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