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다
비행 공포증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비행기를 직접 몰아야 하는 파일럿이 비행이 무서워졌다니 우스운 말이었지만 계속 찍어대는 착륙과 기우뚱거리는 기동들을 계속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밴쿠버는 바람이 불기 아주 좋은 환경이다. 바다와 가깝고 북쪽으로는 산들이 즐비하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강은 바람을 나르는 역할을 한다. 구름이 한 점 없어 비행하기 좋아 보이는 날은 바람이 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람이 구름을 다 날려버렸다는 뜻이기에.
그런 바람 속에서 내가 원하는 기동을 하기엔 더더욱 어려웠다. 툭하면 바람이 찍어 눌러 100피트를 잃거나 바람이 불어 올려 200피트는 거뜬히 상승하기 때문에 고도 유지조차 쉽지 않다.
실제 시험에서는 지정 고도보다 200피트가 높거나 낮으면 탈락이기에 더욱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반듯이 가는 비행이라면 할 수 있겠지만 비행기를 높였다 돌렸다 고꾸라뜨리는 기동들을 하면서 저 바람들까지 신경 쓰기엔 내가 아직은 너무 초보 조종사였다.
그러다 ‘150NM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150마일(240km) 이상 거리의 다른 지역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과정이다.
어쨌든 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150’을 갈 때엔 기동 같은 건 따로 하지 않고 직선 비행만 하면 되니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다른 공항에 착륙도 해야 하는 과정이라 그 부분도 걱정됐지만 연신 찍어댈 뿐 활주로에 착륙을 아예 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기에 괜찮겠다 싶었다.
비행기는 날아올랐고 루트 상 첫 번째 공항에 Touch & Go를 하러 갔다. Touch & Go는 활주로에 착륙만 하고 바로 다시 출력을 올려 이륙하는 과정이다.
비행기는 나름 안정적으로 활주로에 내렸고 나는 곧바로 다시 이륙했다. 그러나 완전히 만족스러운 착륙은 아니었다.
이제 비행기는 다음 목적지로 기수를 틀었다. 이번 공항은 Full Stop 공항이었다. 말 그대로 활주로에서 빠져나와 공항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어쨌든 활주로에 안착했고 사전에 공부한 대로 유도로로 빠져나와 주기장에 멈춘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곧이어 다시 이륙 준비를 마치고 날아올랐다.
다음 공항도 Full Stop이었다. 이번엔 국제공항으로도 쓰이는 다소 큰 공항이었지만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전에 와본 공항이기도 하고 국제공항이라는 말은 활주로가 크다는 말이기에 랜딩 자체가 어렵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항에 접근하자 관제사가 앞 비행기와의 거리 유지를 위해 360도 턴을 지시했다.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나서 조금 더 가니 관제사가 한 번 더 돌라고 하기에 또 빙글빙글 돌았다. 그제야 관제사가 고맙다며 활주로 접근을 허가했다.
활주로가 넓은 건 좋지만 평소에 쓰던 활주로보다 너무 큰 경우엔 착시가 생긴다. 비행기는 뒷바퀴부터 내리는 게 안전하기에 기수를 내리며 하강하다 지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서 기수를 높여 뒷바퀴가 먼저 땅에 닿게 만든다. 그런데 활주로가 너무 넓으면 그 타이밍을 포착하기 어려워진다.
나도 이번엔 그 타이밍을 헷갈려 기수를 조금 일찍 당겼다. 비행기가 통통 튀었지만 어쨌든 내렸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바쁜 국제공항에서 덩그러니 서서 아쉬워하다간 관제소의 불호령을 들을 수 있기에 서둘러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다시 날아올랐다. 비행기는 관제 공역을 빠져나와 훈련 공역으로 들어섰다. 안정 고도에 들어서서 이제 정말 다 끝나가는 비행에 안도할 무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10시 방향, 같은 고도에서 나를 향해 돌진하는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충돌 10초 전.
나는 곧바로 기수를 올리고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비행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5초 정도 흘렀을까.
그 비행기가 내 밑을 그대로 지나갔다.
훈련 공역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니 아찔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고도를 올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비행이 있기 며칠 전 교관과의 비행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교관이 그렇게 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간신히 사고를 비껴갔음에도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비행에 다시 집중했고 마지막 목적지를 찍은 뒤 나의 베이스 공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외워버린 익숙한 주파수. 관제소 컨택을 한 뒤 나의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최고의 랜딩은 무엇일까?
초보 비행사의 착륙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던지는 질문이다.
내린 지도 모를 정도의 스무스한 착륙? 아니다.
내가 터치다운 하겠다고 한 지점에 정확히 내리는 착륙? 아니다.
조종사가 걸어 나올 수 있는 착륙. 즉,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 좋은 착륙이라는 것이다. 갑자기 나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좋은 착륙에 목을 매었었는지에 대한 순간적인 ‘현타’가 왔다.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착륙을 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날 2시간이 넘는 비행을 통해 다른 지역을 무사히 다녀왔다. 부딪힐 뻔했지만 피했고 나는 비행을 마칠 수 있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두 발로 걸어 나왔다.
시험에 눈이 멀어 나는 본질을 잊고 있었다. 시험 보려고 비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안전하게 비행을 시작하고 마칠 수 있는 기술과 절차.
시험을 빨리 끝내고 싶어 진도를 나아가고 싶어 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진행 속도가 더디다고 생각했던 그 과정 속에 생존과 안전을 위한 기술을 나도 모르게 배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진짜 신경 써야 하는 건 시험보다 더 중요한 비행의 본질이었다. 곧바로 나는 마음을 바꿔먹었다.
'나는 안전하게 비행을 마쳤다.
성공스러운 비행이었다.'
비행이 무섭지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