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말이 때때론 정답이다 (2)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말 중 뻔한 말로만 치부하기엔 종종 맞는 것들이 있다. 6년간 해외를 오가며 느꼈던 '맞는 뻔한 말'들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물론 내가 느낀 많은 것은 나조차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라 혹여나 글을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 다 함께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권유하는 내용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또한 이 글의 작가가 서른 인 만큼 모든 에피소드 역시 그 나이대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음도 알려드린다.>
2023년 말, 나는 우울증 호소인이었다. 정식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왜인지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잘 몰랐던 내가 가장 유명한 심리질환인 '우울증'을 그냥 갖다 붙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내 호소가 아예 터무니없지만은 않았던 게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나온 3개의 우울증 자가진단 결과가 다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45점이 만점인 테스트에서는 37점, 15점 만점인 테스트에서는 12점이 나오는 식이었다. 나는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테스트라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싶어 친구 두 명에게 똑같은 테스트를 해봐 달라 요청했었고 이에 그 두 친구는 내 점수를 한참이나 밑도는, 테스트의 만점이 몇 점이건 간에 우울증 수치가 말 그대로 바닥인 수준의 검사 결과를 보내왔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한참 동안이나 화면에 떠있는 '우울증 위험도 : 심각'이라는 글자를 반복해서 읽었었다.
그때 나의 상황이 내 기준에 어려웠던 건 사실이다. 당시는 베트남에 파견되어 회사가 마련해 준 숙소에서 직장 상사분들과 거주할 때였다. 물론 방은 따로 썼지만 원래 내향적인 나는 출퇴근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고 시간이 흘러 업무적으로도 타 부서 일까지 차츰 떠안게 되면서 야근이 아주 잦았다. 직종 특성상 시내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 회사와 숙소가 있었던 터라 취미라곤 주말이 올 때까지 기다려 시내 스타벅스에 가서 앉아있다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9개월이 흐른 뒤 나는 위에서 언급한 우울증 검사를 했다. 정확하지 않게나마 내 무기력함, 우울감 등의 원인을 알게 되니 차라리 속은 조금 후련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기분에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책을 통해 답을 찾고 싶었지만 종이책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 덕에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견한 책 한 권. 그 책은 나에게 일기를 쓰라 말하고 있었다.
일기. 개학이 다가온다는 사실이 비로소 나를 채근해야만 한 달치 에피소드를 하루 만에 욱여넣었던 그 일기. 나랑은 관련 없다고만 생각했던 것을 권유받으니 조금은 의구심이 들었다. 또 일기를 쓰라는 말은 심심치 않게 들어왔었지만 '이걸 쓴다고 뭐가 달라질까'하는 말을 강력한 방패 삼아 행하지 않아 왔던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 2024년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고 1월 1일 기점으로 심연의 감정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그제야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 님도 일기를 매일 같이 쓰신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행동을 따라 해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나 스스로를 더 낫게 해 준다는 일기를 아무 곳에나 적고 싶진 않아서 좋은 노트를 산 셈 치고 4,400원짜리 어플까지 구매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채로 1월 1일이 밝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2024년 1월 1일부터 매일 같이 일기를 빠짐없이 썼다. 물론 두 달 동안만.
일기는 스스로와의 '대화'였다. 무기력에 휩싸여 친구들에게 연락할 힘조차 없었던 나는, 걱정이 될까 가족들에게도 온전히 전하지 못했던 내 감정들을 나는 일기를 통해 '나'에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일기를 '대화'라고 칭한 이유는 내가 던진 말에 대한 회신이 훨씬 나아진 기분과 마음가짐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못한다고 일기장에 털어놓으면 다음 날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의구심으로 답변이 돌아오거나, 내가 주저하는 일들을 털어놓으면 '해야만 하는 일'로써 내면에 각인되었다가 그 주저하던 일을 마주쳤을 때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나를 움직이게끔 하는 식이었다. 그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나서부터는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나는 일기장을 찾아가 나에게 말해주기 시작했다. 1월 1일에 시작한 일기는 눈에 띄는 감정 변화를 보이다가 2월 26일을 마지막으로 그 이야기가 끊긴다.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같이 달리기를 하게 됐고 매번 고민만 했던 헬스장을 등록해서 또래의 베트남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늘어나기만 했던 업무들은 내가 감당할 수 있기에 주어지는 과제 같은 것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사실은 업무가 지나치게 많았던 것임이 밝혀지기는 했다.) 그저 매일 같이 몇 자 끄적인 글들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다. 2월 26일에 일기가 끊긴 이유는 새로운 변화들을 감당하는 걸로 벅찼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당 날짜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내일부터 기분 좋은 나날들이 계속될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물론 일기를 이제 아예 안 쓰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을 알게 된 후로 가끔씩 일기장에 들러 과거의 내 감정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또 그간의 업데이트를 스스로에게 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우울감은 찾을 수 없다.
일기란 어쩌면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현미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만약 삶이 힘들다면 일기를 써보라 권하고 싶다.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 같으면 정식으로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또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스스로가 알아주라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부터 적어보라. 자신이 만약 어떤 것을 모른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가 알고 싶게 만들면 된다. 매일 쓰지 않아도 좋으니 편하게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해보고 자기 자신에게 위로를 받는 신기한 경험을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든 일들은 밑져야 본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