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아봐라

뻔한 말이 때때론 정답이다 (1)

by 에드니

좋은 글들을 써보겠다고 공언하며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껏 쓴 글이라고는 3개 남짓. 핑계를 구태여 찾아보자면 너무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해서였던 것 같다. 그다지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는 인생에 특별함을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니 글감도 그만큼 애매모호해졌다. 그래도 글쓰기를 멈추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해외를 오가는 삶을 살아왔던 내가 그 과정에서 느꼈던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제약 없이 글짓기를 다소 가볍게 재시작해보려 한다. 물론 내가 느낀 많은 것은 나조차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라 혹여나 글을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 다 함께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권유하는 내용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또한 이 글의 작가가 서른 인 만큼 모든 에피소드 역시 그 나이대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음도 알려드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혼자 사는 것을 권유해 보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쓴다. 나는 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또렷하지 않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대학을 타 지역으로 가게 됐고 그 이후로 약 10년 동안은 집에 오랜 기간 머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제 나는 밖에 나와 사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이다. 뭇사람들은 집 나오면 개고생이다, 혼자 살면 서럽다며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주창하곤 하는데 나 역시 그 이야기에 동감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런 내가 혼자 살아볼 것을 권유하는 이유 첫 번째는 더럽게 귀찮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것은 귀찮음의 연속이다. 집 찾기, 하자 확인, 보증금, 계약, 공과금 등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발품 팔아 해결하고 나면 분명 필요할 때만 귀신같이 바닥나는 생필품도 두둑이 쟁여놓아야 한다. 수저, 그릇, 반찬통과 같이 본가에서 살 때엔 언제, 어디서부터 존재해 왔는지도 모를 것들에 대해 알아보아야 하고, 살다 보면 부족해지는 수납공간 때문에 금방 나갈 집에 새 가구를 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의 시간도 거쳐야 한다. 이사했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들이닥치겠다는 주변인들을 만류하는 노고는 덤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 귀찮음 들은 모두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 집의 위치와 면적부터 공간 활용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가구는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어떠한 식기를 사용할 것인지, 그릇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들을 초대하는 것을 염두에 둘 것인지. 하다 못해 화장실 휴지는 어떤 것을 살 건지와 종량제 봉투는 몇 리터짜리를 사야 하는지 조차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처음엔 경력자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처음 분가하겠다고 하면 부모님들께서 바리바리 이것저것 챙겨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혼자 살다 보면 분명히 부모님 댁에 있는 것과는 다른 물건들이 하나씩 생겨나며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공간이 완성되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혼자 살아볼 것을 권유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다. 바로 더럽게 귀찮은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자신에게 맞는 공간이다.


우리는 보통 부모님들이 만들어 놓으신 집에서 성장한다. 부모님께서 사놓으신 침대에 뉘어져 걸음마를 시작하고 부모님께서 쓰시던 식탁 위에 차려진 밥을 먹고 자라며 부모님께서 마련해 놓은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세상 밖에 나와 사회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모님과는 다른 무언가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부모님과 내가 겪는 사건들은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집'이라는 곳은 너무나 감사하고 편안한 공간이지만 언제까지나 온전히 '나'에게 초점이 맞춰진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혼자 살아보며 내 취향이 무엇인지, 내가 집에서 가장 우선하는 포인트들은 어떤 것인지 알아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그 자체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일례로 우리 엄마는 굉장히 미니멀한 것들을 좋아한다. 거실에는 소리가 울릴 만큼 아무것도 없는 것을 선호하며 눈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은 모조리 정리해 버리고 심지어는 정리해 놓은 것조차 보기 싫다며 천을 덧대어 가려버린다. 반면 나는 지구 반대편 뉴욕 소호에 조그마한 스튜디오를 얻은 아티스트마냥 한 공간에 어떤 가구들이 무질서하게 있는 편을 좋아한다. 다 마신 와인병들로 어느 한 공간을 채우기도 하고 LP판을 가져다가 벽면에 전시해놓기도 한다. 나와 우리 엄마의 성격은 굉장히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부분에서 점점 차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 살아보면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직접 눈으로 그 차이점을 느껴보며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더럽게 귀찮은 일을 권유해 보는 것이다.


마지막 한 가지 이유를 더 덧붙이자면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맞는 공간'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자신의 취향이 가득한 공간과 자신이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간다. 대다수의 스트레스가 남들에게 말할 정도로 크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괜찮다 넘길 수 없는 애매한 정도의 스트레스이지 않을까? 그럴 때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소파라든지, 침대에 누워 잠시 천장을 보며 멍 때릴 수 있다면 스트레스가 애매했던 만큼 애매한 동작들로도 기분을 훨씬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걱정 어린 말들과 통상의 안부인사조차 힘든 그런 날들이 있으니 말이다.


또한 그렇게 혼자 지내며 다른 사람이 집에 있을 때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할 수 없었던 이런저런 생각들도 해보고 눈치 보지 않고 홈트를 해본다거나, 본가에서라면 등짝 맞을 시간에 야식을 먹어본다거나 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찾을 확률을 높이는 행위일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이것저것 해본다는 것은 곧 자신이 어떤 것엔 호(好)고 어떤 것엔 불호(不好)인지 알아볼 기회가 많다는 뜻이기에.


물론 그 자체로 경험이 되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대학 시절 방을 이리저리 구해본 경험 덕에 싱가포르에선 하루 만에 2년 동안 살게 될 집을 겁 없이 구하기도 했고, 베트남에선 내 취향대로 가구를 배치해 가며 나만의 집에서 편안하게 살았다. 월세를 보내는 걸 깜빡해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적도 있고, 예전 주소로 택배를 보내 직접 찾으러 간 경우도 많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우리가 집, 여기선 본가에 살았더라면 몰랐을 현실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혼자 살아보는 것을 권유하는 또 다른 이유겠지만 모든 일은 경험이 된다는 전제 아래, 혼자 살면 결국 자신이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세상에 나라는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세상 모든 풍파에 강건히 버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나라는 기준을 분명히 두고 어떤 풍파에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줘도 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풍파에는 목숨 걸고 버텨야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가 인생을 조금은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의 글은 궁극적으로 나를 찾는 여러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공유하고자 한다. 첫 번째 글은 혼자 살아보는 것의 필요성에 대해 다소 건방진 제목으로 적어보았다.


상황상 혼자 살아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권유는 했지만 혼자 살아보며 얻을 수 있는 느낌들이 반드시 혼자 살아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방을 이제는 자신의 취향대로 바꿔본다든가, 감정 쓰레기통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마음을 비우는 것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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