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에 정답은 없다

해외 생활에 대한 고찰, 그리고 반성

by 에드니

해외에 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먹고, 입고, 사는, 의식주의 형태가 다른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경험했던 모로코, 싱가포르, 베트남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모로코에서는 어벤져스가 치타우리 종족으로부터 뉴욕을 멋지게 구해낸 후 아이언맨이 먹자고 했다가 다른 멤버들의 눈총을 한 번에 받았던 샤와르마를 즐겨 먹고, 햇볕이 따갑고 모래바람이 많이 부는 관계로 전통의상인 질레바를 자주 입으며,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모래로 외장을 마감한 집에서 거주한다.


모로코 전통의상 '질레바'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로부터 강제 독립을 당해 생겨난 나라답게 말레이계 음식과 중국계가 70%인 관계로 사천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이 많다. 겨울이 없는 나라인지라 반팔, 반바지를 즐겨 입으며, 나라 전체가 서울특별시 크기로 상당히 좁다 보니 우리나라의 아파트와 같은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산다.


베트남에서는 쌀국수를 아침에 주로 먹고 저녁엔 베트남식 샤브샤브 먹는 걸 좋아한다. 내가 있는 베트남 북부는 12월에 온도가 10도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다양한 의복 형태를 볼 수 있고, 대부분 입구는 좁고 앞뒤로 긴 형태의 3층 집에 거주한다.


기본적인 형태와 더불어 사람들의 성격도 다른데, 이슬람의 문화와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모로코는 지중해식 사고를 가지고 모든 일에 조금 여유롭게 대처하는 편이다. 본인들이 불리하거나 힘든 일이면 '인샬라'라는 말로 신의 뜻에 기대며 넘기는 경우도 많다.


싱가포르에서는 경쟁사회라 그런지 학구열이 굉장히 높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싱글리쉬'라고 불리는 싱가포르식 영어를 이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굳이 바꾸려고 하지 말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국가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하고, 자신들을 아시아의 부국으로 만들어준 리콴유, 리셴룽 총리 부자를 놀라울 정도로 애정한다.


베트남은 화려한 것들을 좋아하고 외식 지출 비중도 높은 편이다. 경제 수준에 비해 비싼 물건인 아이폰을 고수하기도 한다. 과거 정치적인 풍파를 겪으며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본인이 굉장히 미안한 경우엔 그저 웃으며 넘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은 새로운 경험이 되고, 세상을 더욱 넓게 바라보게 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하며, 나의 해외 생활에 대한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함정이 되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훌륭한' 삶을 살아왔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이 친구는 내가 겪은 걸 경험해 보지 못했을 거야. 이 좋은 걸 이 친구에게 무조건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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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한국에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진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 쭉 살아온 그 친구는 그동안 하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앞둔 상황이었다. 잠깐 누리게 된 짧은 여유에 친구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나아가서는 어떤 일을 새로이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모조리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어를 배워서 다른 나라에 가는 걸 도전해 보는 건 어때?'

'혼자 여행을 해보면 정말 좋을 거야. 새로운 세상이 보일 거라고.'

'아직 새로운 시작을 하기에 늦지 않았어. 나도 이랬는데, 결국엔 이렇게 되더라니깐.'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 친구도 그 친구 나름대로 삶의 관성이 있었고, 나의 모든 제안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뜨뜻미지근한 대답만이 돌아왔으며, 나는 그 상황에 대해 점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지, 내가 겪어보니 정말 좋은 경험들이었는데 그걸 왜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시도조차 해보려 하지 않는지 점점 그 친구가 이해가 가지 않기 시작했다.



'아뿔싸!'


순간 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한 인간에 대한 '강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경험에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기 시작했고 나의 '옳은' 경험을 이 친구에게 무조건적으로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내 조언을 가장한 강요를 멈추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상황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곧 도달한 결론은 나는 그 친구가 경험한 것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라는 사실이었다. 내가 해외에 체류했던 5년의 세월 동안 나는 한국에 있어 보지 않았다. 그 친구가 일해온 4년이라는 시간을 나는 모른다. 스물 중반부터 서른이 다 되어갈 시간 동안 내가 만약 한국에 머물렀다면 무엇을 경험할 수 있었을지 나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해외에서 사는 것은 나의 선택일 뿐이지 그 자체만으로 내가 남들보다 더 좋은, 더 뛰어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던 순간이었다. 나아가 아무리 나라가 다르더라도 넓게 보면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라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장소나 환경이 주는 영향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영향을 주고받고 살아가는 건 어디나 동일하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더욱 조심하기로 했다.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도 본인들이 걷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고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그 길은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짐했다. 누군가의 경험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고 비교를 하면 안 되겠다고. 다만 나의 경험을 더욱 멋있게 쌓아나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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