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유급 당한 29살의 고찰 (1)
해외 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진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비행기이다. 대륙에 붙어는 있지만 실질적으론 섬과 비슷한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도 있고, 주변 나라를 둘러보기 위해 두세 시간의 짧은 비행을 즐겨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를 좋아했다. 생일 선물로 또래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게임기를 고를 때 나는 전투기에 달려 있을 법한 조이스틱을 고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 조이스틱을 쓸 수 있는 게임을 찾지 못해 몇 날 며칠 검색해 보다가 겨우 찾은 거라곤 구글이 제공하는 지구본인 '구글 어스'였다.
멋있는 게임이나 시뮬레이션은 아니었지만 내가 스틱을 기울이는 만큼 화면이 돌아가고 조종사의 시점에서 지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물론 '구글 어스'니까 파일럿의 시선이라기보단 우주 비행사의 시선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공항 관제사가 되어보는 게임을 하면서 비행기들을 부딪히게 만드는 바람에 대형 사고를 몇 번 내기도 하고 나이가 좀 들어서는 실제 시뮬레이션으로 인천과 제주를 직접 조종해서 왔다 갔다 할 만큼 나는 비행기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면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창문에 카메라를 들이밀어 지면과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장면을 꼭 찍곤 했었는데 지금 그 청년은 복도 쪽 자리를 배정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전 체크인이나 현장 발권을 할 때 창가 쪽 자리를 요청 조차 하지 않는 서른 살이 되었다. 그리곤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하나 생겼다.
"꼭 무슨 버스 같네... 근데 내가 언제 이렇게 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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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관성이 있다. 어른들이 수도 없이 알려줬지만 들리지 않았던 진리는 이제 내 현실이 되어 있었다. 서른이 다 되어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는 파일럿, 조금 성장해서는 관제사, 대학 시절엔 공항에서 일하고 싶어 했던 아이는 핑계 몇 번과 쉬운 선택과의 타협으로 전혀 다른 길에서의 삶을 살게 되었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관성에 내 몸을 맡김과 동시에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이럴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남들 눈에 이제는 어리지 않은 나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새로운 시작이 두려워지는 나이 그리고 보잘것없지만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쌓아 온 나의 시간들.
아까운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이 시점에서 초심을 잃은 예비 서른 살은 답이 없는 고민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지금이라도? 아니면 너무 늦었나? 어느 날은 결심이 섰다가도 시시포스가 정상에 돌을 올려놓으면 반대편으로 도로 굴러 떨어지듯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매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민이 해결되지 않아 생기는 조급함은 덤이었다.
그러다 문득 정말 처음으로 돌아가보고 싶어졌다. 마냥 조급해하기 전에 그렇다면 지금 나는 왜 이곳 베트남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지, 이곳에서의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이곳으로 왔는지. 내가 비행기를 좋아하기 이전으로 시간을 마구 감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혼자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워 잊고 있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영어 학원에서 처음 만난 원어민 선생님, 미드를 좋아하는 가족들 덕분에 항상 CSI가 틀어져있던 텔레비전, 필리핀에 살아서 한 번도 눈을 본 적 없는 화상 영어 선생님께 락앤락 통에 눈을 담아 보내주고 싶어 했던 작은 마음, 지구본을 돌려가며 세계의 수도를 가리키던 조그마한 검지 손가락.
나는 그 시간 여행 속에서 답을 찾았다. 내가 비행기를 좋아했던 건 단순히 해외로 나갈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내가 정녕 좋아했던 건 해외에서 사는 것 그 자체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전 베트남에 놀러 오신 아버지가 한식당에서 닭갈비를 먹으며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아빠는 네가 왜 그렇게 해외에 살고 싶어 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 것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꿈을 이룬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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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태든, 어떤 모습이든 처음엔 상관이 없었다. 해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 막연했기에 방법을 찾아야 했고 삶은 현실이었기에 그에 맞는 직업도 찾아야 했다.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삶의 관성을 만들어냈고 점점 그 관성에 밀려 정작 해외 생활이라는 꿈을 이루고도 더 큰 것들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 좋은 삶의 모습을 위해 내가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포기해야 할지, 스스로 미련이라고 생각할 만큼 늦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돌아가고자 했던 마음 사이에서 진짜 내가 원하던 삶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초심을 찾게 되었다. 물론 오늘의 글도, 생각도 일순간 까먹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미 꿈을 한 번 이룬 사람이라는 사실은 당분간 내 하루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모멘텀이 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무작정 아쉬운 소리만을 내뱉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어떻게 이 해외 생활을 영위해야 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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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처음 글을 남기고 나서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글을 앞으로 써야 할지, 어떤 글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을 지에 대한 고민에 글을 썼다가 지우기도 했다. 그런 고민의 과정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깨달음이 앞으로 나의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보게 해 준 이 기회가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