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말이 때때론 정답이다 (3)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오는 말 중 뻔한 말로만 치부하기엔 종종 맞는 것들이 있다. 6년간 해외를 오가며 느꼈던 '맞는 뻔한 말'들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물론 내가 느낀 많은 것은 나조차도 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라 혹여나 글을 읽고 마음에 들었다면 다 함께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권유하는 내용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또한 이 글의 작가가 서른 인 만큼 모든 에피소드 역시 그 나이대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음도 알려드린다.>
베트남에서의 일이다. 크지 않은 회사였던지라 나는 파견되자마자 팀장 직책을 부여받았다. 팀 규모라고 해봤자 팀장과 팀원 1명이었으니 아주 작았지만, 곧 일이 점차 늘어나며 한 명을 충원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각자가 맡고 있는 업무의 진행 상황이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애로사항들을 확인하고자 매주 월요일 1시 30분에 팀 미팅을 시작했다.
초보 팀장이 주관하는 미팅이니 특별할 게 있었을까. 그저 예전 내가 팀원이었을 때 참여했던 방식으로 미팅을 진행했다. 주말엔 무얼 했는지, 최근에 유명한 카페 체인점 오픈했던데 가봤는지 등의 기본 질문을 물어보고 베트남 명절이라도 다가오면 무슨 날인지, 왜 쉬는지, 왜 도대체 추석엔 안 쉬는지에 대한 추가 질문을 하는 식이었다. 엉성했지만 그래도 업무가 진행되는 상황을 알 수 있었고 그래도 팀원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오래 일해봤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해 주며 미팅의 명목을 이어나갔다.
원래 있던 팀원은 한국말을 할 줄 알았으며 성실한 사람이었고, 새로 들어온 팀원은 영리하지만 아직은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말괄량이었다. 말괄량이는 팀 미팅이 아니더라도 나와 대화를 하곤 했다. 내용은 좋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있는 자세가 좋지 못한 점, 일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가벼운 점, 지시에 잘 따르지 않는 점 등이 그 주된 이유였기 때문이다.
다른 팀장들도 그 부분에 대해 지적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법인장님도 직접 해당 직원에 대해 언급을 했기에 좌시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직원을 더욱 강하게 다그치다가 한 번은 크게 엇나간 적이 있었다. 하루 뒤, 팀원에게 잠시 시간이 괜찮은지 동의를 구하고 그때만큼은 팀장이 아닌, 그래봤자 몇 살 더 먹은 인생 선배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제야 자신도 잦은 업무 실수에 대해 압박을 느끼고 있었으며, 주변의 그런 시선에 더욱 주눅이 들어있었다고 속 시원히 털어놨다. 그간 자신의 행동들은 일종의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고.
그 대화 이후에도 해당 직원은 여전히 뺀질 대긴 했지만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다른 부서 직원들과도 잘 지내기 시작했다. 곧 회사 소개 동영상을 리뉴얼할 때에는 막내다운 패기로 당당하게 동영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4개월 후, 자신의 꿈을 찾아 말괄량이는 회사를 떠났다.
직원의 퇴사 엔딩이라 그간 나눴던 대화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애매모호해졌지만 퇴사 후에도 우리 팀과 단톡방을 만들어 만나기도 하고 간간이 안부를 물어왔던 점을 감안하면 정말 꿈을 찾아간 것으로 개인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에게 대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팀이 다시 2명 체재로 돌입한 후로는 팀 미팅을 하지 않았다. 업무 시간에 서로가 맡은 업무에 대해 수시로 확인했고, 피드백을 주고받았으며 1명이 도로 빠졌으니 힘에 부치긴 했지만 업계 경기가 다소 얼어붙는 국면에 돌입하자 2명으로도 팀이 돌아가게 되었다. 나와 한 명뿐인 팀원은 그 상황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5-6개월이 흘렀을까. 나는 문득 직장에서의 1대 1 면담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적어놓은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작성자는 유명한 영어 교육 플랫폼의 CEO였다. 글을 읽은 뒤 나도 생각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미팅을 한 게 언제더라. 다음 날, 팀원에게 미팅을 하자고 했다. 오랜만에 마주 앉은 뒤 팀원에게 주말에 무얼 했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그 팀원은 대답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진정한 뒤 그는 이야기했다. 한 명이 빠졌기에 일이 더 힘들어졌음은 자명한 상황이었고, 자신이 힘들지라도 팀장인 내가 더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렇다 할 말을 못 했다고. 그동안 파티션을 넘어 수도 없이 대화했다고 생각했는데 팀원은 마주 앉은 상태에서 던진 질문 하나에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모두 털어냈다.
제일 먼저 고개를 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초보 딱지를 단 팀장이라도 팀원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점에 대해 참으로 미안했다. 믿음직한 직원이었기에, 말괄량이 직원에게 유독 신경을 쓸 때에도, 일이 바빠져 서로 신경 쓰지 못할 때에도 맡은 바 역할을 해낸 직원이었기에 더더욱 그가 보인 눈물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팀 미팅을 다시 시작했다. 팀이 2명일지언정, 평소 업무 시간에 수도 없이 대화를 하는 상황일지언정 우리는 정식으로 미팅을 하기로 했다. 이내 업무 시간엔 예전과 같이 웃음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대화는 올바른 형식을 요구한다. 나와 팀원은 직장에서의 관계였기에 공식적인 면담 시간이 필요했고, 연인 관계에서는 아무리 장난을 많이 치더라도 눈을 보고 마주하는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사과를 하는 입장에선 술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담백히 자신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용기를 곁들인 대화가 필요하고, 오래된 친구 사이에선 장난을 가장해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식일 때도 있다.
대화란 단순히 말이 오가는 과정이 아니다. 자신이 뱉은 말에 진심이 실렸더라도 상황에 따라 상대방의 마음에 온전히 그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 말한 이도, 듣는 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대화가 되지 않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몇몇의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않았을까.
또 하나 새삼 깨달은 것은 굳이 말을 해야 대화가 아니라는 것. 홀로 남은 팀원이 오랜만에 마주했을 때 느꼈을 감정처럼 대화를 하려는 제스처만으로도, 혹은 진심을 담은 행동만으로도 대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 남은 고깃점 하나를 먹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직접 집어 접시에 올려주는 일.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입주민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일.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서로에게 진심을 전하는 대화가 아닐까.
'폼'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어떤 동작을 할 때에 취하는 몸의 형태'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의 제목이 탄생했다. 대화는 폼이다. 바꿔 말하면 대화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여전히 어떻게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간 잘 대화해 왔던 사람과 대화에서도 더욱더 진심을 전달할 방법은 없는지, 괜히 낯부끄러운 상황에서 대화하는 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혹 내 멋대로 전달한 진심이 받는 이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럼에도 항상 올바른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어렵겠지. 하지만 언젠가 대화에 통달한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