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원망의 터널을 지나, 응원의 자리에서

by 박하린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노래 가사처럼 문득 물었다.

왜 어른들은 그렇게 뭘 모르는 걸까?

그리고 나도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 된 건 아닐까?


이 생각은 흘러 흘러 내 부모에게 닿았다.

솔직히 말해, 나의 부모도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었다.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시절은 일주일에 한 번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몇 장을 들고 가서 학교에서 저금도 하던 시절이었다.

열심히 모으면 그대로 돈이 굴러서 목돈을 만들 수 있던 시절.

가파른 경제 성장만큼 열심히 일한 부모 세대 덕분에 가지고 싶은걸 다 가질 순 없었지만 배고픈 기억은 없었던 세대.


내가 그 시절 갖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예쁜 표지의 새 노트였다.

하지만 우리 집엔 늘 10개 묶음의 똑같은 노트만 있었다. 아끼고 아껴야 잘 살던 시절, 짠순이 엄마에겐 조금이라도 저렴한 그 노트가 최고의 노트였다.

노트 묶음의 마지막 노트를 하수구에 몰래 버리고 잃어버렸다고 거짓말로 둘러댔던 날,

하필 아랫집 아주머니가 범죄 현장을 목격한 건 8살 답게 눈치채지 못했더랬다.

엄마에게 된통 서럽도록 혼이난건 물론이고

다 쓴 줄 알았던 노트가 한 묶음 더 나왔을 때 느낀,

그 절망감은 생애 처음 느끼는 마음이었다.

내가 원해도 가질 수 없었던 것을 향한 너무도 뚜렷한 첫 절망.


그 뒤로도 나는 내가 원하던걸

부모에게 마구 주장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반찬을 해달라 떼쓰지도 않았고,

어린이날 큰 인형 대신 값싼 작은 인형을 골랐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어도 부모의 형편을 짐작해 다른 길을 택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는

내가 원하는걸 명확히 말하지 않은 내 탓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지만 내가 마구 떼쓴 적도 없었으니

또렷이 말해봤다면 뭔가 좀 달라질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그러나 아이를 낳고 보니 알게 됐다.

진정한 관심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아이의 관심사, 아직 스스로도 모르는 감정까지도 훤히 보였다.

부모는 몰랐던 게 아니라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거였다.

그들은 해야 할 일과 자신들의 상처에 갇혀, 눈과 귀가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부모를 원망하고 있냐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긴 원망의 터널을 거의 빠져나왔다.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할 수 있다.

다만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무조건의 사랑을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는 짐은 끝내 내 몫으로 남아 있다.


가끔 서럽지만, 그것조차 나다.

이제 와서 달라고 떼쓴다고 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지금의 내가,

조금은 좋다.


나는 살가운 딸은 아니다.

부모가 기대하는 다른 역할이 있어도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줄 수 없는 것을 애써 내주기보다,

그들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버스를 타고 간다는 노래교실을, 나는 마음 깊이 응원한다.


그리고 내 눈과 귀는 내 아들에게 활짝 열어두었다.

내리사랑이라던가.


아마 정말 그런가 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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