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 네 결, 그 꼴 그대로 살아내는 일
생겨먹은 대로 산다는 것,
그건 의외로 어렵다.
애초에 내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아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래서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검사들이 있다.
성격검사, 적성검사, 진로검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누군가 대신 설명해 주는 종이 몇 장.
물론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건 남이 붙여주는 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확신은 거기서 오는 게 아니었다.
남에게 맡기지 말자.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내가 되었으면 한다.
나는 내가 어떤 순간에 기분이 가라앉는지,
어떤 이야기에 유달리 화가 나는지,
왜 유독 그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나를 달래줄 수 있는지까지.
나는 기분이 가라앉으면 음악을 마음껏 들으며,
초콜릿을 한 봉 집어삼키며 억울함을 씻어낸다.
어떤 날은 일기를 끄적이고,
또 어떤 날은 그림을 끄적이며 마음을 달랜다.
이게 바로 나다.
남이 정해주는 도표보다,
내 일상의 작은 습관이 나를 더 정확히 말해준다.
그래도 생겨먹은 대로 산다는 건 꽤 어렵다.
나라는 인간은 그냥 단순하게 취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존재이기 때문일 거다.
언젠가 가족 동반 모임을 하고 온 날,
아들이 동갑내기 친구는 글씨를 벌써 잘 쓰는데
자신은 잘 쓰지 못한다고 속상해했던 적이 있었다.
너는 왜 남과 너를 비교하냐고,
너는 너만의 속도로 알면 되는 거라고,
연습한 적도 없는 걸 어떻게 잘 쓰냐고
바람직한 부모로서의 일장 연설을 했다.
하지만 반전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그저께 아침이었던가,
아들이 삶은 달걀노른자를 먹기 싫다고 입에 내내 물고 있다가
결국 뱉어내버려서 아침밥은 밥대로 못 먹고 지각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헐레벌떡 나가며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서
결국 하이톤의 잔소리를 다다다 쏟아내는
못난 엄마가 되고 말았는데,
내가 한 말이 과간이었다.
누구누구는 너보다 키는 더 작은데 몸무게는 너랑 똑같고
누구누구는 너랑 키가 같은데 몸무게는 더 많이 나가잖아!
그렇게 먹어서 언제 안 말라지겠어! 어쩌고 저쩌고
아뿔싸.
아들은 나로부터 비교를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자각.
내가 내 생겨먹은 꼴을 모를뿐더러,
아들의 생겨먹은 꼴도 헤치고 있는 순간이었다.
내 생겨먹은 꼴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남이 만든 잣대보다 내가 아는 나를 믿는 것.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남이 만든 잣대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없고,
부모가 만든 잣대라면 아마 더욱더 깨닫기 어렵게
마치 내 몸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내 생겨먹은 꼴을 열심히 찾는다.
그리고 아들의 생겨먹은 꼴도 열심히 찾는다.
아마,
그게 생겨먹은 대로 산다는 거 아닐까.
아니다.
그냥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로 한다.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한다.
그냥.. 필요한 순간에,
나다운 걸 결정해 내는 그 선택.
그 정도면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걸로 하기로 한다.
아마 그 정도면 될 거다.
안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