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따까리가 깨달은 삶의 균형의 기술
티비가 너무 재밌다.
오랜 기간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가 유치원으로 떠나고 비로소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앉아 커피 마시며 보는 티비가 너무 재밌다.
깔깔거리며 손뼉치며 웃다보면
세상 이렇게 재밌는게 있나 싶을 정도다.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에 스트레스가 실려 같이 날아가는거 같다.
티비를 바보상자라고 하지 않나.
현대를 사는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거 같다.
할 일 없이 (혹은 있어도) 계속 티비만 보다보면
지루하고 지루해져 바보가 되는 느낌.
근데 가끔 이렇게 바쁜 삶 가운데
짬을 내서 잠깐 잠깐 보는 티비는 어찌나 재밌는지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일을 시작할 때.
그때의 나는 배운 대로 주어진 일을 거절 없이 해내기 바빴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주변에 나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렇게 맞추고 난 뒤에서야
내가 아프다는 걸 알았다.
정말로 몸이 아파야만 휴식을 허락하는 사회 풍토처럼
나는 정말로 몸이 아팠고 그 핑계로 쉼을 조금 얻어낼 수 있었다.
그때는 일찍 나와 병원 가는 그 버스가 그렇게 상쾌했다.
그리고 나서 처음 '균형'이란 걸 생각했다.
삶에도 균형이 필요하다는걸, 그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나서 내가 또 한번 큰 흔들림을 겪은 건
아이를 키우면서였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울면 안아주고 싶었고 발달 단계에 맞게 놀아주고 싶었고
건강한걸 먹이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갈아 아이를 키우던 시간이
일년쯤 지났을까.
나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졌고
자다가 깨서 내 곁에 다가와 내 잠을 깨우는 아이는
밀쳐내고 싶어졌다.
(물론, 실제로 밀쳐낸 적도 있다.
오늘 아이가 미웠단 당신, 죄책감 느끼지 마시라)
그렇게 또 내 삶의 균형이 흔들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애쓴다고 훌륭한 직원이 되는것도 아니고
내가 이유식 가끔 사먹인다고 나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었을거다.
다만 조금 더 내 긴장을 완화하는 장치들을
내 삶에 의식적으로 끼워두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 남편은 쉬는 시간이 있으면 뉴스를 듣는다.
나는 상상만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거 같은데
남편한테는 어쨌든 그게 휴식이다.
나는 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며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간다.
혹은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는다.
아직도
때로는 나도 균형잡기에 실패해
화를 내기도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럴 땐,
지금의 나 자신을 생각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우선순위에 둘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시 무게 추를 조절한다.
그래서 조금 흔들리고 다시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아마 그게 나이가 들어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예전보다는 조금 쉬워지는 것.
고작 40 따까리가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엄마가 놀릴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늙었다고 말하기엔 한참 이른 나이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덜 흔들리는 법을 조금은 알게 됐다.
젊을 때 겪은 온갖 시행착오 끝에
무게추를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도 알게 됐고,
추는 점점 묵직해져
웬만한 흔들림엔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혹시,
지금 당신의 무게추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