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토핑
처음에는 그저 흰 반죽이었다.
무엇이 될지 몰랐고, 잘라질 줄도 몰랐다.
어린 시절
그저 흰 덩어리의 반죽에 불가했을 파이는
자라나며 여러 가지 환경의 조물거림으로
그 형태가 바뀌어나간다.
어느 날,
어른이라 불릴만한 때가 되어 되돌아보면
어느새 제법 파이 같은 모양의 일상이 완성되어 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각자의 파이를 하나씩 가지게 된다.
한 조각은 아빠
한 조각은 회사원
한 조각은 헬스장에서의 나
사람마다
가장 큰 파이 조각의 종류가 다르고
잘라놓은 파이의 개수도 다르다.
전체 파이의 크기도 물론 다르다.
토핑이 있는 파이도 없는 파이도
속에 잼이 있는 파이도 없는 파이도 있다.
어떤 파이가 제일 좋은 파이라고 결론 낼 수는 없다.
애초에 입맛이 다 다른 법이니까.
태어나기에 아주 커다란 파이를 만들 수 있게
커다란 반죽을 받은 사람도 있고
반죽의 크기는 좀 작아도 토핑재료를 좀 많이 받은 사람도 있다.
사는 동안 열심히 토핑재료를 주워 모으는 사람도 있고
나눠주는 사람도 있고
반죽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사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한지
사람의 개수만큼 다른 모양의 파이가 있다.
그냥 나는 하루하루 살아내다 보니
내 파이는 가급적 많은 조각으로 쪼개고 싶어졌다.
엄마인 나
직장인 나
그림 그리는 나
친구들 속의 나
공부를 하는 나
운동을 하는 나
음악을 듣는 나
이렇게 글을 쓰는 나
그러면 하나의 파이가 너무 커지는 걸 막고
하나의 파이 조각을 조금 잃어버려도
내 전체 파이는 그 모습 그대로 비교적 온전히 유지된다.
내가 가진 직업만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엄마로서의 나에게 너무 혹독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사는 동안 토핑을 꽤 열심히 주워 모은다.
때로는 돈으로 사고
때로는 읽어서 얻고
때로는 걸으며 얻고
종종 마음 그릇을 넓히고 새로운 걸 배워서
파이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토핑의 위치를 바꿔보기도 한다.
그렇게 파이를 다듬는다.
오늘은 블루베리가 여기 있는 게 예뻤는데
내일은 빼고 싶을 수도 있다.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나다.
내 파이는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파이어야 한다.
하지만 남들 보기에 그럴싸하면 그것도 꽤 좋은 일이다.
나에게 한 두 개 종류만 있는 파이는 어쩐지 매력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것 그대로가 좋다면 그건 그 사람의 파이일 뿐, 그 파이의 향기 그대로를 바라본다.
오늘의 토핑으로는 블루베리가 예뻤다.
내일은 빼는 게 예뻐 보일지도.
중요한 건 블루베리를 올릴지 뺄지
내가 결정했다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