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감정이 내 감정을 흔들 때

by 좋은투자자

아내와의 갈등이 아직 채 가라앉지

않았던 그 시기,


우리 집은 하루가 멀다 하고

작은 파도가 일었다.


첫째는 원래 조금 예민한 아이였다.


낯선 환경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민감했고, 걱정이 많아 ‘불안’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저녁에 불을 끄고 자기 전,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어도


“아빠, 같이 가줘.”


이 말을 꼭 반복해야만 했다.


주방 불빛 아래로 혼자 걸어가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화장실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 앞에서 “아빠, 여기 있어.


절대 가지 말고 기다려.”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난 뒤부터

그 감정은 더 또렷해졌다.

사소한 말에도 토라지고,
이유 없이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마치 마음속 어디에 작은 불씨가

자리 잡고 있다가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치솟는 것 같았다.


게다가 연년생인 동생은 정반대 성향이었다.


활발하고, 장난 많고, 튀고 싶은 욕구가

가득한 아이.


첫째가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툭툭 건드리고 달려드는 일이 흔했다.


첫째에게는 그 모든 행동이
“억울하고, 서럽고, 감당 안 되는 감정”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혔다.


정말 말 그대로, 사소한 것 하나로도 터졌다.


나는 그 싸움을 말리는 데

내 에너지의 90%를 쏟는 것 같았다.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프라이팬 위에서는 기름이 튀고,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감정이 튀었다.


하나는 울고, 하나는 소리치고,


내 머릿속에서는 “왜 이렇게 싸우지?”라는

질문만 맴돌았다.


어떤 날은 말리다가 지쳐서
그냥 둘러앉아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래… 싸울 때까지 싸워봐라.
나는 이제 모르겠다.”


나는 평소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지 않는 편이었다.


부모로서 지켜야 할 ‘선’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고, 다정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선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동생에게 소리칠 때, 갑자기 문을 쾅 닫을 때…


내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말을 하는 내가 놀랄 정도로 감정이

삐걱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버티는 동안
문틈으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프가 퇴근하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사실,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오늘 하루의 고됨과
내 안의 분노와 무기력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까지...


그 모든 것을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와이프가 들어오는 표정은
내가 기대한 표정이 아니었다.


피곤해 보였고, 지쳐 있었고,
말 한마디 건네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내 감정을 삼켜야 했다.


넋두리를 할 수도 없었고,
위로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지 못한 마음”이
내 안 깊은 곳에서 또 하나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내 안에서 뭔가가 조금씩 부서지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화가 참아지지 않는데도 참아야 했고,
위로받고 싶은데도 위로할 줄 알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감정도, 아내의 감정도

모두 나의 감정을 흔들어댔다.


나는 그제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아이와 아내의 문제’로 보이던 많은 순간이
사실은 이미 한계까지 차올라 있던


‘내 감정의 문제’ 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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