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관의 충돌: “현행 vs 선행”

by 좋은투자자

아이의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치던

그 시기, 우리의 갈등은 또 다른 방향으로

번져갔다.


바로, 교육관의 차이였다.


처음엔 단순한 의견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은 우리 부부

사이의 온도를 극명하게 갈라놓는 핵심

갈등이 되었다.


나는 늘 아이들의 ‘배움의 속도는

각자 다르다’고 믿었다.


그래서 지금 배우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적합하고,

건강한 학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보드게임을 하고, 함께 요리를 하며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배움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한다고

믿었고, 즐거움이 곧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가 갖고 있는 능력만큼
“할 수 있을 때 더 끌어줘야 한다”라고 믿었다.


선행을 조금이라도 더 해야 한다.

지금 할 수 있는데 왜 안 시키냐는 입장이었다.


아이의 가능성은 어릴 때 더 크게 자란다는

믿음이 아내에게는 확고했다.


그래서 숙제를 할 때도, 아내는 끝까지 함께

붙들어 해결하려 했고,


나는 “오늘 할 수 있는데 까지 하자”라고 말하곤

했다. 그 차이는 아주 작아 보였지만 아이에게는

서로 다른 신호로 전달되었다.


우리의 온도차는 아이에게는 그대로 ‘부담’이 되었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작은 변화도 크게 느끼는

아이였다. 세상 어디에서나 안전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부모의 서로 다른 요구 기준은
그대로 혼란이자 압박이었다.


싸움은 점점 잦아지고,

서로를 향한 감정은 날카로워졌다


저녁이면 아이들의 숙제로 자주 부딪혔고,

나는 그 싸움을 말리느라,
하루 에너지의 모두를 소모했다.


이러한 교육관의 충돌은

우리 갈등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첫째가 숙제 앞에서 '도와달라고' 울먹이면
나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라고 말했고,


아내는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해보자.”라며

단호했다.


내가 보기엔 아이의 에너지가 바닥이었다고

생각되었지만, 아내의 눈에는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로 보였다.


그 사이에서 아이는 결국 감정이 폭발하듯

책과 연필을 집어던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의 태도가 우리 부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당신은 너무 아이를 나약하게 만들어.”
“당신은 아이의 감정을 너무 몰라!”


서로의 대화는 점차 단단해지고,
감정은 더 날카롭고,
대화는 상대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서로의 방식의 결론은 모두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이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느새 아이의 교육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였다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고,
아내는 아이의 가능성을 키우고 싶었다.


둘 다 아이를 위한 마음이었지만,

그 방식이 너무 달랐다.


그 시기, 우리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아이도, 아내도, 나도.


분노, 억울함, 죄책감, 무기력.

이 네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와


내 안에서 폭발 직전의 압력처럼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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