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부모는 아니어도, 덜 후회하는 부모가 되기까지.

by 좋은투자자

와이프와의 교육관, 가치관의 충돌은
생각보다 오래, 깊게 이어졌다.


‘현행이냐, 선행이냐’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방식이 틀렸다는 주장으로

바뀌었고, 그 주장은 점점 말의 높이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위한다고 말했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은 조금씩

닳아갔다.


그 갈등은 부부 사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집 안의 공기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그 날카로움은 결국 아이들에게까지 흘러갔다.


아이들은 이유 없이 예민해졌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부딪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왜 이렇게 싸우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은 이미 우리 감정의

파도를 그대로 건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모의 갈등은
아이가 가장 먼저 느끼는 기류였다.


그리고 그 기류 한가운데서
나는 점점 화내는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연년생 남매의 아빠로서
나는 늘 한 가지를 바랐다.


“제발, 오늘만은 싸우지 말자.”


하지만 그 바람은 대부분 저녁 식사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무너졌다.


장난이 시비가 되고, 시비가 울음이 되고,
울음은 결국 서로를 향한 고함으로 번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과자 하나, 간식 하나, 누가 먼저 집었느냐,

누가 더 많이 먹었느냐.


어느 날은, 사소한 간식 문제로 아이들이

계속 실랑이와 몸싸움을 벌였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과자 봉지를 집어던진 적도 있었다.


그 순간의 정적.
아이들의 놀란 눈빛.

그리고 곧바로 밀려오던 후회.


나는 아이들을 말리던 부모가 아니라,

그 싸움에 감정으로 뛰어든 또 다른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들보다 먼저
내 감정이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만 좀 해.”
“왜 맨날 싸워, 둘 다 똑같아.”


말을 내뱉고 나면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후회하고 있었다.


그 순간마다 마음속에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정말 문제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연년생 남매가 싸우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비현실적인 기대였다.


아이들 역시 인간이고,
그 안에는 경쟁심도, 질투도, 억울함도 있다.


특히 아직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시기엔 그 감정이 몸으로 먼저 튀어나오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요구하는 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에게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는 걸.


원석은 한 번에 깎이지 않는다.


시간과 반복, 그리고 실패를 통해
조금씩 모서리가 다듬어질 뿐이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면서
아이들의 세계는 급격히 넓어졌다.


자기 생각이 또렷해지고,
부모의 말에 “왜?”라고 묻기 시작한다.


말을 잘 듣지 않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의 나는 아이들을 이해하기보다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와의 충돌은 더 잦아졌고,
나는 점점 화내고 후회하는 부모가 되어갔다.


그래서 방향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되,
아이를 억누르지도 않는 방식.


하면 안 되는 것에는
절대적인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사람을 때리는 것, 물건을 던지는 것,
상대를 무시하는 말은 어떤 이유에서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정했다.


대신, 그 안에서의 선택은 아이에게 맡겼다.


놀고 싶은 방식, 숙제를 시작하는 시간,

작은 결정들은 스스로 하게 했다.


통제 대신 범위, 지시 대신 기준을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건 아이보다

나 자신이었다.


아이의 감정이 요동칠 때
내 감정도 함께 휘둘리지 않는 것.


과자 봉지를 던졌던 그날 이후,
나는 한 가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화가 올라오는 순간,


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
한 박자 늦게 숨을 고르는 것.


그제야 알았다.


부모 역할의 시작은
아이를 바꾸는 데 있지 않았다.


나를 다스리는 데서
모든 게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완벽한 부모는 아니다.
여전히 화를 내고, 여전히 후회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화가 올라오는 순간,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감정은
아이의 문제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문제일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멈추게 했다.


화내고 후회하는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아이를 가르치는

법이 아니라, 내 마음을 바라보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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