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행복
한강으로 산책을 간다. 고가도로의 긴 옹벽에 무성한 담쟁이 사이로 능소화가 드문 드문 피어 있다. 난 일부러 이 길로 돌아서 간다. 담쟁이를 보고 싶어서다. 언젠가 구청 공무원이 농약을 살포해 가시만 남은 생선처럼 시멘트 벽에 마른 줄기만 붙어 있던 것을 보며 나는 가슴이 아팠다. 담쟁이는 강했다. 보란 듯이 벽을 다시 덮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가도로를 점령할 듯 푸르렀다. 벽에 금이 가겠지만 담쟁이가 단단하게 묶어줄 것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담쟁이가 멋들어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던 날이 있었다.
“브람스에 갈까?”
8월의 햇살이 정수리에 쏟아지는 한낮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집을 나섰다. 브람스는 광안리 남편의 사택 근처에 있는 카페다. 외벽에 담쟁이가 어우러진 아담한 삼 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 그 카페를 마음에 둔 것은 담쟁이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담쟁이를 사랑하였다.
작년 이맘때 본 담쟁이가 올해는 훨씬 풍성해졌다. 푸른 이불속에 파묻힌 집 같다. 역시 담쟁이는 벽돌이나 돌담이 제격이다. 진녹색 줄기 화초가 질그릇에 어울리듯. 물건에는 격에 맞는 것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집안에는 하얀 치펜데일 의자가 놓여 있을 것만 같다. 일제히 드러눕고 일어나며 만드는 담쟁이 이파리들의 초록 물결. 그 흔들림이 요란하지 않다. 40년이 넘도록 한 여인에게 연모를 품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는 브람스. 이름 때문이 일까. 햇살을 받은 수만 개의 이파리들이 흔들림이 어딘지 쓸쓸하다.
옷 속까지 파고드는 햇살을 거리에 남겨두고 브람스로 들어선다. 담쟁이가 늘어진 작은 문은 비밀의 화원으로 이어지는 숨겨진 입구 같다. 커피를 주문하고 창이 많은 삼층으로 올라간다. 작지 않은 공간에 서너 명이 한가하게 앉아 있다. 유리창엔 터질 듯 마른하늘이 가득하다. 너울거리는 담쟁이 잎들이 근사한 프레임을 만들어 바다 풍경이 담긴 그림 한 폭이 된다. 바다를 말릴 듯 내리붓는 태양빛이 바닷물과 백사장에 부딪쳐 브람스에까지 건너온다. 눈이 부시다.
우리는 늘 앉았던 긴 소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소소한 생활사며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기대어 책을 읽다가, 휴대폰으로 채팅도 하고.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지루하지 않다. 브람스를 들으며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맞은편 테이블에 젊은 여자가 앉아 있다. 흐트러진 배낭, 소지품들이 탁자 위에 어지러이 널려 있고. 얇은 스니커즈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를 묶은 그녀가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책을 읽고 있다. 헐렁한 티셔츠 아래 드러난 어깨 위로 여행자의 한가한 한때가 머물고 있다. 그녀의 모습도 프레임 속에 풍경이 된다. 저런 젊음이 부럽다.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나도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녀를 보며 나도 때로는 다른 사람의 풍경이 되고 싶어 진다.
여기서는 브람스의 곡만 들려준다. 브람스도 커피를 마시며 작곡했을까. 커피 한 모금에 선율을 떠올리고, 커피 한 모금에 깃털 달린 펜으로 악보를 그렸을까. 채 마르지 않은 잉크 묻은 가락들이 허공에 떠다녔겠지. 거기까지 상상하니 구석진 나무의자에 더부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브람스가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음표를 그리는 펜촉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브람스의 눈물’이라고 알려진 현악 6중주 2악장이 내 주위를 휩싸고 돈다.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위해 떠나는 연인들의 뒷자락에 흐르는 음악이다. 브람스에겐 가슴 아픈 눈물. 눈물과 어울리지 않는 이 눈부신 날에, 찬란해서 오히려 더 가슴속에 파고든다.
이어지는 ‘헝가리 무곡 5번’. 남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리듬에 맞추어 고개와 팔다리를 흔든다. 채플린의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우스꽝스러운 연미복을 입은 이발사가 궁둥이를 실룩거리며 뚱뚱한 독일 군인의 수염을 깎으려는 중이다. 이발사는 헝가리 무곡에 맞추어 가죽 칼갈이에 면도용 칼을 스윽슥 문지른다. 칼을 가는 동작과 음악이 어찌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마치 혁대에서 음악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그 손길이 예술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엇엔가 집중하다 5분 정도 멍하니 있기를 해야 창조적인 생각과 사고력이 생긴다고 한다. 난 이 ‘멍 때리기’를 즐긴다. 일순 긴장과 스트레스가 풀어지고 온몸이 고무줄처럼 느슨해진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에 녹아드는 프림처럼 흐느적거린다. 나는 브람스에서 그 순간을 마음껏 누린다. 쏟아지는 햇살, 흐르는 음악, 곁에 있는 사람과. 나의 육체와 정신이 온전한 것, 이 모든 것이 고마워지고 살아있다는 충만감이 온몸으로 차오른다.
브람스의 선율은 또다시 늘어지고, 카페의 오후의 시간도 한없이 늘어진다.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이 느림.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기를.
아직도 해는 중천에 떠 있고. 휴가지의 여름은 그렇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