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 - 한곬 현병찬 선생님
알콩달콩 연애 드라마를 보고 나니 우리가 연애할 적 생각이 났습니다. 이제는 화석이 된 이야기지요.
부산에서 대학에 다니던 그가 광복동 유명한 화방에 가 궁한 용돈을 털어 붓 세트를 사서 보내온 일이 있었습니다. 애인이 붓글씨를 배운다고 하니 수소문하여 좋은 화방에서 사 보낸 것입니다. 큰 붓과 중간 붓 이름을 쓰는 세필까지 다섯 개가 가지런히 꽂아진 붓첩이 시골 학교에 배달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동네인 덕수초등학교에는(서울 덕수초가 아니라 제주입니다.) 서예가이신 교감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관사에 살면서 방과 후에는 어린이들 서예를 가르쳤고, 밤에는 붓글씨를 배우려는 동네 학부모들을 가르쳤습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상장도 붓글씨로 이름을 쓰던 때라 붓글씨를 쓸 일이 많았습니다. 안덕초등학교에(덕수초등학교 옆동네에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선배 선생님 둘과 면사무소에 다니던 문순희 씨,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 붓글씨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퇴근하고 선생님께 배우러 가면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았습니다. 선생님은 먹을 적시고 붓을 벼루에서 다듬어 먹물의 양을 조절한 후, 슥슥 써 내려갔습니다. 화선지에 글씨가 입혀지는 것을 침을 삼키며 보았습니다. 방안에는 먹향이 가득했고 밖은 먹물처럼 어둠이 깊어갔습니다.
방과 후면 받아온 서제를 교탁에 펴 놓고 연습했지요. 초반에는 열심히 했지만 점점 연습을 게을리하여 한 번에 통과하는 일이 적었습니다. 애인이 사랑을 가득 담아 보내준 붓으로 썼지만 연습이 부족한 글씨는 삐뚤빼뚤 이었습니다. 글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꾸준히 연습한 선배 언니는 늘 한 번에 통과하곤 했습니다. 나도 매주 다른 서제를 받아오고 싶었지만 욕심만 앞서고 연습은 뒷전이었지요.
각자 일주일 동안 연습하고 제일 잘 쓴 것을 들고 갔습니다. 작품을 내놓으면 빨간 색연필로 고쳐 주셨습니다. 통과가 되면 다음 주에 써 올 서제를 직접 써 주셨지요. 서제를 쓰는 동안 먹물 묻은 붓이 슥슥 움직이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곤 했습니다. 가지고 와서 연습하고는 모아두지도 않고 모두 버렸습니다. 선생님의 친필인데….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 가까이 계셨는데 더 열심히 배울걸.
그렇게 한 1년을 배우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헐렁헐렁 배워도 애인이 보내준 붓 끝이 조금씩 닳아갈 즈음 궁서체, 판본체를 넘어 흘림체까지 배워 두루마리 화선지에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상장도 쓰고, 입간판도 쓰고, 행사 때마다 작은 글씨 큰 글씨 가리지 않고 붓글씨를 쓰곤 했습니다. 지금도 붓펜으로 붓글씨 흉내를 내어 쓰는 것은 그때 배운 덕분입니다. 배운 것은 언젠가는 쓸모가 있습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지요.
‘아직도 선생님이 살아계실까?’
현병찬 선생님을 검색했더니 금방 관련 기사와 사진이 떴습니다. 참 우리는 얼마나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요. 다행히도 아직 생존해 계셨습니다. 중절모에 한복을 입고 작품 옆에 서 계신 사진에는 얼굴도 변하지 않고 그때 그 모습이십니다.
커다란 제목이 눈에 띄어 얼른 읽었습니다. 서예작품 1088점과 서예 관련 도서 4816권 등과 천 평이 넘는 사재를 제주도서예기념관에 무상으로 기증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다른 기사에는 가족회의 때 외손주가 기증에 찬성을 해서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평소 인품이 고결하신 선생님다웠습니다.
선생님은 소암 현중화 선생과 해정 박태준 선생에게 사사를 받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예가 중의 한 분이십니다. 특히 선생님은 한글 서예와 제주어를 붓글씨 작품으로 옮기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제주어는 붓글씨로 옮기기 어렵지만 제주어를 지키려는 의지에 대한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찌어찌 선생님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세 번의 벨이 울리고…. 좀 떨렸습니다. 어떤 말부터 시작할까.
“여보세요?”
전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40년 전 목소리가 그대로였습니다.
“현병찬 선생님 맞으시죠? 저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덕수초등학교에 계실 때 붓글씨 배우던 오설자예요. 안덕초등학교 여선생님들과 가서 조금 배웠지요….”
선생님은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통과하지 못해 속상해하던 게으른 제자라서 기억하시는지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20년 전 퇴임하고 후학 양성을 하고 시도 써서 시집도 내셨다고 합니다. 한글을 쓰고 좋은 글을 많이 필사하다 보니 붓끝으로 시가 걸어 나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하신 일이 존경스럽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통화하고 보니 막 교사로 발령받아 천방지축으로 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습니다.
며칠 후, 제주 예술인마을 소인이 찍힌 커다란 봉투 하나 등기로 왔습니다. 뜯어보니 붓글씨로 쓴 화선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조심조심 그것을 펼쳤지요. 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제주어 시 한 편을 적어보내주셨습니다.
어떵살코
조들지말앙
촘앙살민
잘살아진다
‘한곬예술’, ‘날마다좋은날’ 낙관도 찍은 글씨를 대하니 선생님 얼굴이 보였습니다. 선생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글자를 쓸 때, 먹을 찍어 한 번에 내리 써야 해.”
덕수초등학교 교무실에서 글씨를 써 주시면서 하던 낭랑하고 독특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말은 미루기 대장인 나에게 무엇을 하고자 마음먹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실천하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조바심내지) 말고
참고 살면
잘살아진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전화를 드렸습니다. 표구하여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할머니들이 했던 말이라네. 보내 준 책도 두고두고 읽을게.”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우리는 잘살아질 것입니다.
한곬 선생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