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화가의 구멍가게의 날들
동네 구멍가게를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다.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다. 그는 20년 동안 온 나라 구석구석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들을 찾아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낮은 지붕을 이고 있는 오래된 가게들. 유리 미닫이문에 ‘막걸리’나 ‘음료수’라고 쓴 빨간 글씨가 다정하다. 막 누군가 막걸리 한 병을 사고 이가 잘 맞지 않아 뻑뻑한 유리문을 닫고 나간 것만 같다. 간혹 가게 앞에 우체통이 놓여 있고 담배 간판이 달려 있기도 했다.
배경은 모두 지워지고 오롯이 구멍가게만 그린 그림은, 공간이 만든 의자에 구멍가게가 앉아 있는 듯하다. 가게 옆에 세워진 대빗자루는 머리가 하얀 구멍가게가 짚은 지팡이 같다. 가게는 편안히 앉아 먼 곳을 보며 쉬고 있다.
가게 앞에는 늘 목련이 피어 있거나 산수유가 피었거나 동백꽃이 피어 있다. 온 나무에 수만 송이 목련이 피어나 있다. 은행나무가 있기도 하고 플라타너스나 포플러가 지키기도 했다. 꽃이 지면 눈꽃이 피었다. 단풍이 물들고 산하가 꽃으로 피어나는 향기 속에 조용히 있는 구멍가게. 나무도 가게의 나이만큼 늙어갔다.
오랜 역사가 남아 있는 가게는 보기만 해도 정겹다. 작은 가게 앞에는 늘 평상이 있다. 그 나무 그늘에 평상에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가 쌓여 있다. 가게 앞 나무 아래는 동네 마실을 나왔다가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하던 평상이 있다. 마당을 쓰는 빗자루, 쓰레기를 담는 플라스틱 통, 누군가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다. 낡은 의자지만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 없다.
‘낯익은 것에 눈을 돌리자 함께한 시간만큼 마모되고 둥글어진 모서리에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보고만 있어도 좋다. 아련한 마음이 밀려온다.
제주도에 있는 우리 고향집은 시골이어서 가게가 몇 군데 없었다. 동네에서도 외진 곳에 있어 가게가 멀었기에, 가게에 들어가 뭔가를 고르고, 알록달록 주전부리를 보며 입을 다시고 하고 말 것도 없었다. 용돈도 없을뿐더러 오가며 보는 곳이 아닌 가게는 나에겐 이미 ‘구멍가게’가 아니었다. 엄마 심부름으로 두부를 사러 가거나 한복 동정이나 황도 간스메(통조림)을 사러 가게에 다녀오곤 했다.
주로 동부락에 있는 가게에 갔다. (우리 마을은 동부락, 서부락, 새동네, 도로못 이렇게 있는데, 동부락과 서부락 사이 새동네에 우리집이 있었다.) 늘 가게를 보는 아저씨는 어릴때 아파서 다리를 쓰지 못하셨다. 가게 문을 열면 런닝 샤쓰 차림에 파리채를 들고 파리를 잡고 있는 아저씨가 가게 작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어디에 물건이 있다고 하면 좁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 꺼내 오고는 돈을 드리고 잔돈을 받았다. 그렇게 부처님처럼 앉아 물건을 팔았다. 아이들이 가게 앞에서 놀면 잔소리도 했다. 가끔 엄마가 외상으로 뭔가를 사 오라고 할 때는 가기 싫었다. 아저씨는 장부에 적었고 나는 물건을 꺼내 왔다. 가게에 갈 때마다 그 아저씨는 가만히 앉아서 돈을 받기만 하니 참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서부락에 있던 '안선이네 가게'에도 갔다. 우리 집에서 두 가게 거리는 비슷해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갔다. ‘안선이네 가게’는 길보다 아래쪽이라 움푹 들어간 집이었다. 우리 엄마보다 어렸으니 삼십 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키가 작은 데다 등에 혹이 나 있어 한복 저고리가 들려 보였다. 사람들이 가게 이름을 ‘꼽추네 가게’라고 부르지 않고 ‘안선이네 가게’라고 불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 어디서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굴렁진 곳에 가게가 있어 주인은 더욱 작고 굽어 보였다. 안선이 이모는 가게를 하면서 한복을 만들기도 했다. 한복을 짓다가 손님이 오면 바늘을 머리에 꽂고 그 작은 몸으로 나와 물건을 팔았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가느다란 눈에는 늘 선한 웃음이 어렸다. 어른들 말에 결혼도 했었는데 가자마자 쫓겨 나왔다느니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고사리 장마가 지나면 아이들이 지네를 잡아다 그 집에 팔았다. 수 백 마리를 담은 통에서 지네 빨간 발들이 우글거리곤 했다. 오빠도 지네를 잡아 그 집에 가서 팔았다. 오빠는 지네를 잘 잡았다. 지네를 판 돈은 사 먹지 않고 우리 방 벽지가 갈라진 틈에 숨겨두었다. 어버이날이 되면 그 돈으로 엄마 아부지 양말을 사고 소풍 갈 때는 그것으로 보름달 빵을 사기도 했다. 물론 안선이네 가게에서 샀다.
나중에 엄마가 부녀회장을 하면서 부녀회 소득사업을 하느라 그 집에 농협 물건을 도매값으로 가져다 놓았다. 그러면 안선이 이모는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물건을 팔았다. 워낙 양과 종류가 많았기에 동네 사람들이 많이 왔고 물건은 잘 팔렸다. 당연히 부녀회 소득이 많아졌다. 엄마는 그 일을 서귀포에선가 한국부녀회 행사에서 부녀회 사업 성공사례로 발표하고 최고상을 받기도 했다. 그 후로 계속 농협 지점처럼 물건을 가져다 팔았고 그 작은 가게는 늘 북적이곤 했다.
학교로 가는 사거리에도 세 군데 가게가 있었다. 이층 집과 맞은편 가게. 그리고 육지에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하는 가게. 거기서는 도화지를 샀다. 점심시간에 집에 와 밥을 먹고 계란 하나를 가져가면 도화지 한 장과 라면땅이나 자야를 살 수 있었다. 미술이 든 날은 자야를 먹을 수 있는 날이기도 했다. 라면을 튀긴 과자. 그 속에 별사탕도 들어 있었던 바삭한 과자. 세상에 그보다 맛난 과자는 없어 보였다.
미술시간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라거나 어떻게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그림을 그리라는 선생님 말에 우리는 미술 교과서에 있는 그림을 베끼거나 상상으로 그렸다. 명숙이가 그림을 잘 그렸다. 언젠가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린 것을 그리고 있었다. 사과가 싱싱하고 이파리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린 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기에 명숙이 그림을 보고 따라 그리곤 했다. 그런데 사과나무가 아니라 사과 줄기였다!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예쁘고 정겨운 가게들이 그려진 그 책을 넘기며 나는 2권을 주문하고 말았다. 어린 날, 입 내밀며 심부름 갔던 가게가 떠오르고 플라스틱 통마다 가득한 지네가 우글거리던 모습도 생각난다. 작은 몸으로 마루에서 나와 물건을 팔던 안선이 이모와 늘 앉아서 돈 계산을 하던 손이 하얀 동부락 가게 아저씨도 떠오른다.
지금도 건물은 달라진 모습으로나마 남아 있지만 가게는 사라지고 없다. 가게를 지키던 주인도 이 세상에 계시지 않다.
사라지는 것들은 그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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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들은 이미경 작가의 책에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