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와 나무꾼이 산다
성언 씨는 제주 신촌 바닷가 근처에 산다. 온몸에 선한 기운이 넘치는 이다. 그는 오십이 되어서야 여섯 살 아래인 인자 씨를 만나 새 인생을 시작했다.
봄이 막 피어날 때, 고향에 갔다가 그의 집에 들렀다. 잔디 깔린 작은 정원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었다. 쉰 두 종류나 되는 꽃들이 철 따라 핀다는데, 마가렛과 데이지가 바닷바람에 흔들렸다.
울타리에 심은 사과나무는 꽃망울이 발갛게 맺혔고, 배꽃은 막 피어나고, 자두나무는 꽃술만 수북했다. 벽을 따라 만든 온상에는 상추며 깻잎 같은 푸성귀가 싱싱했다. 마당 구석 청계 다섯 마리를 키우는 닭장은 문을 열어도 냄새 하나 나지 않았다. 낯 모르는 이가 문을 열었는데 닭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만 주억거리며 어슬렁거렸다. 꽃도 동물도 주인을 닮았다.
옥상에는 파고라를 지어 그늘막을 만들었다. 친구들이 준 든든한 나무로 성언 씨가 직접 만들었다. 여름내 거기서 지내면 더운 줄 모른다며 웃었다. 반짝이는 평상에 앉으니 눈부신 신촌 바다와 신촌 하늘이 들어왔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기둥이며 벽이 견고했고 나뭇결이 살아 있었다. 세심한 주인 손길에 30년이나 된 세월의 더께를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요리를 했다. 노릇노릇 고기를 굽고, 야들야들 상추를 뜯어오고, 보글보글 배추 된장국을 끓였다. 퇴직하고 3년 동안 식사 준비를 하겠노라 마음먹었다면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아내가 옆에서 뭘 하려고 해도 앉아있으라 했다. 성언 씨가 신나게 만든 음식은 어느 것 하나 맛나지 않은 게 없었다.
우리는 몸이 뒤로 넘어가게 음식을 먹고 조금 남은 공간을 차로 채웠다. 모두 퍼질러 이야기를 나눴다. 설명절마다 만났지만 오랜 시간 속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터다. 성언 씨는 하회탈 같은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긴 말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한마디도 보탬이 없어서일 것이다.
성언 씨는 세 살 때 아버님을 여의고 어려운 형편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검정고시로 고등과정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분식가게를 했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아 작은 아파트도 샀다. 고시학원 수강을 병행하느라 두세 시간만 잤다. 떡볶이를 만들며 수험서를 읽고 어묵을 끓이며 문제집을 외웠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제주에 살던 큰 형님이 돌아가셨다. 집에 내려와 보니 형수는 재가했고, 부모 없는 중학생 조카 둘만 있었다. 그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제주로 전근 신청을 했다.
“결혼하면 어린 조카들을 돌볼 수 없잖아요?”
성언 씨는 오직 조카들만 생각했다. 박봉을 쪼개 아이들을 돌보고 학비를 보태느라 옷 한 벌로 몇 계절을 버텼다. 그렇게 힘든 생활 속에서도 20여 년 넘게 사회복지시설 봉사활동도 하고 기부도 거르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조카들을 분가시키고 나서야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조카들은 성언 씨네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효도한다. 안락의자며 텔레비전이며 그들이 사줬다고 자랑하는 성언 씨 얼굴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거기까지 듣고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무너지는 한 가정을 일으키고, 자신의 청춘을 희생하며 조카들을 돌보고 키운 것을 듣고 나니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작년 읍장님으로 정년퇴직을 했다.
"여행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결연하게 말하는 성언 씨는 인자 씨와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올레길을 걷고, 한라산에 오르고, 어느 날은 지리산에 가 있다가도 틈틈이 동네 친구들 일을 앞장서 돌보고, 과수원에서 귤 따는 것도 도와준다.
성언 씨는 정말 부지런하다. 현관에 어지러이 벗어놓은 신발을 어느새 삭 정리해 놓곤 했다. 장모님 집에도 성언 씨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고칠 것이 있나 돌아보고 불편하지 않게 보살펴 드렸다. 퇴직금을 뚝 잘라 용돈을 드리기도 했다.
그들에게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다. 결혼한 지 13년이 되었지만 아이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다른 데서 누리고 있다. 세상없이 금슬 좋은 그들은 집 근처 바닷가로 자주 나간다. 인자 씨가 좋아하는 트로트를 들으며 정자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성언 씨는 파도치는 바위틈에서 아내가 먹을 우럭이나 놀래미 같은 고기를 낚아 온다. 저녁에는 매움탕을 끓여 호록 호록 먹는다. 외롭고 힘든 청춘을 보낸 그가 참한 인자 씨를 만나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있으니 그동안 희생한 시간을 돌려받은 것이다.
인자 씨는 간호사로 오랫동안 일했다. 웃을 때는 가수 김연자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트롯을 엄청 좋아한다. 그렇게 웃으며 성언 씨를 즐겁게 한다. 인자 씨 오빠는 여동생이 결혼할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혼사진 속에서도 웃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척 흡족해한다.
“진실하고 ‘된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동생이 복받은 거지.”
연금 받으면서 걱정할 것 없으니 둘이 띵가띵가 놀면서 살라고 한다.
성언 씨와 똑같은 잠옷을 입은 인자 씨가 어릴 적 흑백사진을 꺼내놓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언니는 새 옷을 입고 있고 그 옆에 고무줄 치마를 입은 뾰로통한 얼굴로 서 있는 어린 인자 씨, 빡빡머리에 검은 교복을 입고 집 앞 팽나무 아래 서 있는 오빠들, 부모님이 젊을 때 가족 모두 한라산에 오른 사진에는 인자 씨 언니가 봉봉 한 상자를 들고 있다. 역사적인 한라산 등반에 친척이 '협찬'한 거라는데. 빛바랜 사진들을 보며 한참을 깔깔거렸다.
물끄러미 우리를 보던 성언 씨가 낮은 목소리로 한 방 날렸다.
“그야말로 추억의 한 장면이네요. 저에게는 어릴 적 사진이 한 장도 없네요.”
우리는 그만 정지화면이 되고 말았다.
“내가 저 흑백사진 미리 봤더라면 ‘절레절레’였을 것 같네요”
또 한 방. 그는 우리를 다시 동영상으로 살려냈다.
다음날 아침,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마당에 돋아난 쑥을 뜯어 메밀가루에 버무려 전을 부치고, 금방 낳은 청계란까지 삶아놓았다. 따끈한 그것을 상 모서리에 톡톡 두들겨 껍질을 깨고 홀랑홀랑 입안에 넣었다. 부침개도 금방 동이 났다. 빙떡까지 한다는 걸 말렸다. 뭐든 좋은 것을 다 주려는 마음.
“그렇게 착한 사람이 나 같은 악녀를 만나 변했어요.”
인자 씨가 큰 소리로 농담해도 성언 씨는 그저 씩 웃을 뿐이다.
신촌 바닷가에는 선녀와 나무꾼이 산다.
‘고기를 낚는 나무꾼’ 성언 씨에게 선녀 옷을 맡긴 인자 씨는 우리 시누다.
그들이 있어 신촌 바닷가는 날마다 반짝반짝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