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에 사는 산토끼

산토끼와 미스 동해

by 오설자

어느 날, 현관 앞에 배달된 커다란 종이박스는 비에 젖어 찢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포장지에는 동해시 김 00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아, 산토끼가 보냈구나. 산토끼는 인도 여행에서 알게 된 친구입니다. 상자를 열어 보니 옥수수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열기와 습기, 옥수수 싱그런 냄새가 한꺼번에 훅 올라왔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서울에 가도 애들만 보고 그냥 내려온다면서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전화기를 붙들고 오래도록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면서 언제 개님과 호랑님과 같이 만나자는 말도 했습니다. (남편들이 개띠와 호랑이띠입니다.)


몇 년 전 인도에 여행 갔을 때, 일행끼리 서로 인사를 하다가 그녀도 토끼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농사도 짓고 대 살림을 하는데 뭔가 쌓이기 시작하면 한 번 그렇게 훅 떠난다고 하면서 옆에 서 있는 작은 딸과 웃었습니다. 웃는 모습이나 성격이나 엄마와 함께 다니면서 하는 행동이 예뻐서 나는 그녀를 ‘미스 동해’라고 불렀습니다. 열이틀간 길지 않은 여행이었지만 열 명이라 가족같이 지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는 많이 친해졌습니다. 함께 여행을 하는 것만큼 서로를 잘 알 기회가 없기 때문이죠. 자이푸르로 가는 긴 시간 동안 기차 안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했습니다. 새댁이 정성껏 밥을 지어 시부모님 밥상을 내가자 석쇠에 구운 생선으로 가져오라 했다면서 힘들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대식구를 챙기는 생활이 몸에 배었는지 일행을 식구처럼 챙겼습니다. 네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 모시고 그런 와중에 그렇게 여행을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단하다고, 잘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가끔 그렇게 풀 기회가 있어야지요.


핑크시티에서 암베르 성에 올라갈 때였습니다. 일몰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아쉽게도 노을은 다 사라진 후였습니다. 암베르 성 너머 석양은 어떨까 상상하면서 고대했는데 오는 길에 본 해넘이가 전부였습니다. 지프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덜컹거리는 데다 속도를 내니 정말 어지러웠습니다.


나하가르 성 전망대에서 보는 어둠과 뒤섞인 붉은 기운은 멀리 보이는 붉은 벽돌의 암베르 성을 더욱 신비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망대에서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는 여행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부르는 노랫소리가 퍼졌습니다. 어디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단합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맥주를 시켰습니다. 히말라야 맥주라서 그랬을까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어느 순간에 마시느냐에 따라 맥주 맛이 달라지는가 봅니다. 체코에서 마신 맥주는 그래서 맛있고, 여기서 마신 맥주는 또 그래서 맛있고. 한 순배씩 돌았고 갑자기 모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처럼 흥이 올랐습니다. 기운이 없던 사람들이 생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행하는 며칠 지나 서로 친해졌고 맥주 한 잔의 힘으로 우리는 무장해제가 되었습니다. 적당히 어둠이 내렸고, 여행 중이고, 모든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나라 낯선 공간에 와 있고, 이 모든 것이 이성을 조금씩 허물었습니다. 어색한 벽을 허무는 데는 한두 잔의 맥주면 충분했습니다.


먼저 산토끼가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고~~!”

그야말로 고고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미소 짓던 60대 후반 큰언니도 한 잔 마시더니 둑이 터졌습니다.

“영 맞지 않아. 궁합도 보지 않고 결혼을 했어. 결혼 안 할까 봐 궁합도 못 보게 했어. 논현동의 그 예쁜 집도 날리고...”

큰언니의 짝은 눈만 크게 뜨고 알듯 모를 듯 미소만 지었습니다. 그 나이 되면 다 이해가 되나 봅니다.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친해졌습니다.


한참을 놀고 내려오다가 급해졌습니다. 어두운 길 한쪽으로 돌아가 적당한 곳에 앉았습니다. 둘이서 ‘인도인 체험’을 했지요. 그때 산토끼가 말했습니다.

"넌 남편에게 그리 고분고분하냐. 너무 그러지 마."

나보고 신랑 말대로 하는 바보라고 했고 나는 바보 맞아, 하면서도 앞에서만 그러고 내 맘대로 한다고 했더니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남편 앞에 살아 있는 그녀는 산토끼가 되었고, 남편 앞에 죽은 체하는 나는 집토끼가 되었습니다.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산토끼가 하는 말에 차가 부서지게 웃었습니다.

“나는 개가 싫~어!”

산토끼 성정에 말만 그렇다는 걸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람들은 겪어봐야 압니다. 그렇게 조용히 조신하게 다니더니 그 안에 이런 화산을 감추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지요.


그 후 여행을 많이 갔지만 더 이상 산토끼 같은 재미있는 일행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인도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책을 냈고 그녀에게도 보내 주었습니다. 동해에 한 번 가리라 하면서도 못 가고 말았지요. 동해를 생각하면 산토끼가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동해 쪽에 산불이 나 동해시까지 번졌다는 말에 산토끼가 걱정되어 전화했더니 불꽃이 멀리서 너을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마음에 있는 사람에게 관련된 것들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곤 합니다. 그녀가 동해에 살지 않았다면 그저 안타까운 뉴스로 지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통화를 마치고 지나간 생각을 하며 상자를 뜯었습니다. 옥수수수염이 껍질 밖으로 솟아 나와 있었습니다. 어른들 모시면서 농사를 짓고 내게까지 정성을 보내 준 산토끼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옥수수를 먹으면서 또 오래 산토끼 생각이 날 것입니다.




느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무궁화호를 타고 찰랑이며 낯선 곳으로 가서 걷기도 하고 스며들기를 시작했습니다. 단양 물길을 걷고 충주로 갈 예정이었지만 문득 계획을 바꿔 동해로 가기로 했습니다. 산토끼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산토끼야, 오랜만이네. 우리 걷다가 동해에 갈 건데 만날 수 있을까?”

뜬금없는 번개에 산토끼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전화를 받으며 꼭 오라고 했습니다.


한섬 길 앞에 ‘행복’을 넣어 행복한 길이 되었다.


해파랑길을 따라 동해 한 바퀴를 돌고 묵호역까지 걷고는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산토끼를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산토끼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껴안고 방방 뛰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왔습니다. 인도 여행담을 많이 들었다면서 가족들도 우리도 알던 사이처럼 쉽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남편과 대학생 아들과 함께 왔고 미스 동해는 직장에서 회식이 있어 나중에 합류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온 가족이 환대해 주니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고 느닷없이 한 전화에 이렇게 온 가족이 출동하다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습니다.

근처 횟집으로 가서 회를 시켰습니다. 우리는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산토끼는 더 예뻐졌고 직장도 다니고 여전히 활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웃을 때는 최병서 같은 산토끼 신랑님은 정말 유머가 있었습니다.


숙소 앞에는 이런 풍경이 보인다


산토끼 동생이 한다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기사를 하려고 온 아들은 그때까지도 남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근처에 노래방에 갔습니다. 미스 동해도 직장 회식이 끝나자마자 왔습니다. 미스 동해와도 껴안고 반가움을 나눴습니다. 엄마들 모임에 달려온 그녀가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직장에 다니느라 힘들다면서도 환하게 웃는 얼굴은 빛이 났습니다. 개님과 호랑님도 금세 친해져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습니다. 우리는 노래도 부르고 맥주도 마시고 자정이 넘도록 놀았습니다.


아들과 미스 동해가 어른들 노는 것을 장단 맞춰 추면서 분위기를 돋웠습니다. 산토끼가 아이들을 참 잘 키웠습니다. 정말 다정다감한 가족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즐겁게 사는 그녀 가족을 보니 흐뭇했습니다. 목쉬도록 놀고 산토끼 동생이 하는 모텔로 왔습니다. 이미 방을 잡아 놓았더군요. 그 마음씀에 고마웠습니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는데 열린 마음이 있으면 더 특별한 이야기가 됩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은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들에게 환대를 받는 일은 더 감동입니다. 언제 서울로 오면 또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산토끼와 맺어진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꺼내도 재미있습니다.

그녀와 좋은 인연으로 오래 간직하려고 합니다.


동해 바다. 그만큼이나 넓고 맑은 산토끼가 이곳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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