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네 고기국수

정성으로 만든 국수 한 그릇

by 오설자


나는 원래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자취를 하면서도 흔한 라면도 끓여 먹은 적이 많지 않다. 지금도 라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남편이 면을 좋아해서 어쩔 수 없이 국수도 하게 되고 라면도 사다가 쌓아놓게 된다.


얼마 전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행복 국숫집 고기국수’가 나온다. ‘죽을지도 모르는 암환자’가 원하는 음식을 먹게 해 달라는 애달픈 부탁에 행복국수 사장이 고기국수를 해 준다. 제주를 대표하는 음식이 된 고기국수. 그 원조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단언컨대 화순에(전라도 화순 말고 제주에도 화순이 있다.) 있던 할머니 국수가 그 원조가 아니었을까. 화순에는 오래전부터 고기 국숫집이 하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1983년 처음 발령받아 간 화순에 있는 안덕초등학교 교문 근처에 할망네 국수가 있었다. 간판도 없는 짜부라진 곳에서 하는 국수는 고기뼈를 푹 고은 국물에 삶은 고기를 더벅더벅 얹어 만든 고기국수였다. 처음 먹고 완전히 입에 들어앉아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 자주 먹었다. 남편도 고기국수를 못 잊어해서 가끔 해주곤 했다. 물론 할머니가 만든 국수와는 달랐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국숫집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깔끔하게 정돈한 인테리어가 식당이라기보다 귀여운 카페 같은 곳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작지만 깨끗한 실내에 아기자기한 장식이 주인의 감각을 알게 한다.

가게에 갈 때마다 영화 속의 ‘카모메 식당’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예쁜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는 사장님은 얼굴도 예쁘다.


‘어멍’은 엄마를 이르는 제주어다. 제주어에는 이렇게 ‘ㅇ’으로 축약된 말이 많은데 바람이 많은 곳에서서로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그리된 이유도 있다.

건대가 가까워 대학생들도 많이 온다. 단골손님이 많이 생겨 가게는 늘 손님이 있다. 가끔 그곳에 가면 할머니 국수와 가장 가까운 맛이라고 남편이 좋아한다. 국숫집 주인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국수를 먹는다. 이제는 손목이 아프고 힘들다는 말을 듣고는 국수를 먹으면서 미안해진다.


식당이 이렇게나 귀엽다.


품질 좋은 사골을 푹 고아 밤새 에어컨을 켜서 식히고 기름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걷어낸 다음, 그 국물을 육수로 쓴다. 돼지고기를 딱 먹기 좋은 정도로 삶아 어슷 썰어(이게 중요하다. 보기 좋게 규칙적으로 썬 고기보다 가장자리가 얇고 가운데로 갈수록 도톰하게 써는 방향과 모양이 고기의 맛을 더해준다. 매운탕에 넣는 무를 칼로 돌려가며 깎아 놓듯 썰어야 제맛이다.) 푸짐하게 얹어준다.


고기는 제주에서 직송하여 사용한다. 물론 국수 면도 시중의 면을 사용하지 않고 제주에서 올라오는 국수를 사용한다. 굵은 데다 오래 삶아야 하는 그 면은 맛이 찰지다. 그녀가 직접 만든 부추김치는 질기지 않고 국수와 참 잘 어울린다.



정성으로 만든 국수 한 그릇


그녀는 시도 쓴다. 그녀가 쓴 시 '수세미'가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걸려 있다.


내가 깨끗해야

남을 닦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남을 닦으니

나도 깨끗해짐을

알았습니다

- 홍수안, <수세미> 전문

내년에는 <멸치>가 걸린다고 한다. 하이쿠 풍의 그녀 시가 참 좋다.

시 쓰는 사장이 해 주는 국수는 특별하다.

우리는 정갈하고 깊은 맛 나는 국수를 먹으며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수고와 정성도 함께 먹는다.


사장님은 이제 4시 반까지만 국수를 만들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기로 했다면서 국수를 먹고 일어나는 우리와 함께 가게를 나선다. 가게문을 닫고 그림 가방을 든 그녀가 새털처럼 걸어간다. 그 뒤로 따스한 가을 오후 햇살이 따라간다.


<어멍네 고기국수> 맛을 많은 이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홍사장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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