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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Dec 22. 2023

날마다 씁니다

작가는 매일 쓰는 사람


 ‘하루 글 한 편 쓰기’가 중요한 목표가 된 지 벌써 4년째입니다. 참 지키기 힘든 약속입니다. 점점 말랑한 생각들은 딱딱해지고 상상력도 퇴화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낍니다. 그러니 늦기 전에 써 놓아야 합니다.


 뭔가 글이 될 것 같아 써 보면 한 두 단락에서 멈추곤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작가가 글을 쓰다가 화장실에 간 것도 독자는 알아차린다는데, 끊어진 글은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 ‘글 근육’이 없었던 겁니다. 그 한계를 깨어보고 싶었습니다.

 처음 1년은 한 주제로 A4 한쪽만 썼습니다.


 1년을 쓰고 나서는 천 단어를 써 보리라 마음먹게 됩니다. 두 쪽 반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기승전결을 똑 부러지게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소재를 메모한 씨앗공책에서 글감을 골라 씁니다. 때로는 순조롭게 풀리고 어떤 소재는 여전히 한두 문단에서 멈추지만 어떻게든 주제에 근접한 생각을 쓰며 지면을 채워봅니다. 엄청나게 많이 쓴 줄 알았는데 아직도 정한 지면은 반도 채우지 못합니다. 다시 쥐어짜면서 씁니다.


 “글쓰기는 양 떼를 몰고 가는 일과 같다.”는 C.S. 루이스의 말을 생각하며 제멋대로 가려는 양들을 잘 몰아서 한 주제로 가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양 떼를 몰고 가다가 길을 잃은 글들이 한 편 두 편 쌓여갑니다. <매일 글 하나> 폴더에는 ‘걸레인 초고’ 수백 편이 들어 있습니다. 며칠 동안 묵히며 발효시킨 후 꺼내 읽어봅니다. 당연히 엉망진창이지요. 다듬고 또 다듬고…. 다시 며칠 후 꺼내서는 사정없이 지웁니다. 지난한 퇴고의 과정이 이어지고서야 어느 정도 글의 형태가 잡혀갑니다.


 써 놓은 글들은 ‘꽃 찾으러 왔단다’하면서 짝을 찾듯 저희들끼리 손을 잡고 불러 모읍니다. 한 편의 글이 두세 편으로 나뉘기도 하고, 두세 편이 모아져 한 편의 글이 됩니다. 마침내 비슷한 성격의 글들을 모아 두 권의 책으로 완성하게 됩니다.


 만일 자주 써 두지 않았다면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청탁을 받고 마감이 정해진 목적성의 글은 이상하게 쓰기가 힘들었습니다. 습관처럼 써 놓은 글에서 적당한 것을 고르고 여러 차례 퇴고를 하다 보면 조금 나아지곤 했습니다.

 

미셀 들라크루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다 보니 이제 습관이 된 듯합니다. 모니터를 마주하여 나누는 끊임없는 나와의 대화는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사소한 것을 따스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됩니다. 상황이나 장면 혹은 사물을 조금 더 자세하고 깊이 눈여겨보며 그들이 감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글을 쓸 때 나는 살아 번득이는 매 순간 느낍니다. 어쨌든 정해진 지면을 채우고 있으니 근육이 조금 붙은 걸까요. 눈에 띄게 글이 좋아진 것은 모르겠으나 내면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10년은 써야 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하루 세 시간. 글쓰기에도 어김없이 일만 시간의 법칙이 통하는 것일까요. 글쓰기를 시작한 지 올해로 만 십 년이 되지만 여전히 사유와 통찰을 찾기에는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해 보입니다.


  작가는 매일 읽고 쓰는 사람입니다. 읽기와 쓰기는 한 몸입니다. 읽지 않은 날은 쓰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애드먼드 윌슨처럼 생의 마지막 날에도 침대 발치에 산소 탱크를 둔 채, 히브리어를 읽고 공부하는 열정에 비기지는 못하겠지만, ‘읽고 쓰기’는 변함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매일의 기적‘이라는 길을 따라 양 떼를 몰고 갑니다. 나의 대표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니까요.


<여성문학> 2023년 겨울 창간호


미셀 들라크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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