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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n 02. 2024

갖고 싶은 한 장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 책방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도 아니다.”

<섬에 있는 서점>에 나오는 말이다. 서점 보다 책방으로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우리 동네에는 대형 서점만 있다. 동네 골목을 오갈 때마다 모퉁이에 책방 하나쯤 있으면 얼마나 다정한 골목이 될까 여기곤 한다. 카페나 식당, 편의점, 세탁소, 미용실은 두 군데나 있는 그 골목에 작은 책방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지나치다가 그곳에 들러 책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따듯할까. 더러 한두 사람이 책을 보고 있을 그곳은 온기가 서린 정다운 그림이 될 터인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 책방>은 하드커버를 집 모양으로 오려 아래 그림이 드러나게 장정한 예쁜 책이다. 스물 세 곳의 작은 책방 그림을 강맑실 사계절 대표가 그리고, 책방지기들이 글을 썼다. 색연필로 정갈하고 동화 속 그림처럼 따스하게 그린 책방이 예뻐서 자꾸 눈길이 간다.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마을의 책방에서는 각기 지향하는 종류의 책을 팔기도 하지만 마을에 스며들어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문화를 일으킨다. 독서회를 만들어 책을 읽고 토론하며 작은 음악회를 열고 북토크나 전시회를 기획한다. 사람들은 생활 속에 책방을 들이며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목록에 보니 제주 책방이 압도적으로 많다. 내 고향 제주에 책방이 많이 생긴 것은 정말 다행이고 기쁜 일이다. 종달리는 책방 동네라고 해도 될 정도다. 소심한 책방, 책약방, 책자국이 있고 달책방, 제주 풀무질까지 구좌읍에 있는 책방만 소개된 스물 다섯 곳 중 다섯 군데이다. 한림에 있는 책방 '소리소문'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의 서점 150'에 선정되기도 했다. 내 고향에 아름답고 특색 있는 책방이 여러 군데 생기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고마운 마음이다.


 

  제주에 여행 와 색다른 볼거리로 책방을 들르는 사람이 많아지고 올레길 걷기로 제주의 경관을 품은 책방을 중심에 두고 하는 나들이가 더해지고, 각기 책방들이 지향하는 책들이 특색을 가지고 있어 책방이 많아졌다고 제주풀무질 은종복은 분석한다. 그는 동네 책방이 살아야 마을이 산다고 주장한다. 그러려면 도서정가제를 하고 온라인으로 살 때 할인을 하는 제도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도서관과 학교에서는 마을에 있는 책방에서 정가로 책을 사주면 동네 책방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 편리하다는 핑계로 자주 온라인으로 책을 사는 나도 뜨끔해진다.


 


 “책방에는 책만 있지 않습니다. 책방에는 시간과 공간도 있습니다. 책에 담겨 있던 시공간이 동네책방을 통해 골목에 펼쳐질 때 동네는 이전의 그곳과 전혀 다른 공간이 됩니다. 매일매일 오가며 마주하던 일들은 이제 새로운 가능성이 됩니다.”    


 별내에 있는 '오롯이서재' 책방지기의 말이다. 책방은 그렇게 골목을 바꾼다. 오롯이서재 책방에서 책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을 신청한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권 갖가지 작은 선물과 편지가 함께 온다. 다정한 편지와 생각지 못한 책을 받아 읽는 기쁨이 참 컸다.


 '그림책방카페 노란 우산' 책방이 눈에 띈다. 우리 고향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을 보고 눈이 커진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두 채에 한쪽은 카페를 하고 한쪽은 책방을 한다. 그곳은 그림책을 주로 취급한다. 고향집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다음에 가면 들러보고 싶다. 제주에 있는 책방 한 군데씩 다녀볼까 하는 마음이 모락모락 일어난다.


 

 사회학자인 노명우가 추천글을 썼다. 그가 쓴 책, 아버지의 일생에 시대적인 역사를 대입하여 사회문화적으로 비교한 <인생극장>을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난다. 북텐더라고 소개하는 그도 ‘니은서점’을 운영한다. 인문학을 지향하는 예쁜 서점이다. 두 번이나 찾아갔지만 아직 책방지기는 만나지 못했다.


 아름다운 동네 책방 그림들이 정말 다정하다. 누구라도 이런 책방 하나씩 가슴에 안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책방에서 동네 사람들 모여 책을 읽고 살아가는 시간을 나누는 모습을 그린다. 가지고 싶은 한 장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동네 책방이 견뎌낼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이 있어야 할 텐데….

 

 한 달에 두 번 북클럽을 하는 '날일달월'도 있어 와락 반가운 마음이 인다. 따듯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비스듬히 경사진 책방 바깥 풍경을 단아하게 그렸다. 사진에는 예쁜 이젤과 풍성한 화분이 나와 있지 않다. 여기는 전국에서 공수한 최고의 재료로 만든 정갈한 생채식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책에 소개된 공간에 내가 들어가 있는 느낌은 또한 새롭다. 책 속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듯 가까이 다가온다. 그 속에서 지인들과 북토크를 하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듯하다.



“누군가 떨면서 글을 읽을 때면 덩달아 나의 목구멍도 간질거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가 잠시 읽기를 멈추면 함께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때때로 그 멈춤의 순간에 눈물을 삼키기도 하고 콧물을 훌쩍이기도 한다.… 떨림의 순간을 지나면서 책방은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공간이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공간으로 변하는 것이다.”  


  '생각을담는집' 책방지기의 말처럼, 우리에게 그곳은 ‘함께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공간 ’이 되고 있다.


 ‘책방지기가 할 일은 책의 진심이 잘 드러나도록 매만지는 일’이라는 말은 책방지기의 마음을 잘 드러낸 말이라고 여겨진다. 책이 건네는 진심을 나는 얼마나 받아들이고 또 공감하며 새기고 있을까.


 작은 책방에 앉아 책과 만나는 시간. 창으로 들어오는 초록 바람이 살짝 책들을 건드리고 지날 때, 나는 책의 건네는 진심을 알고 싶어 더 오래 머문다.


<문학秀>, 2024. 여름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동네 책방>

2022. 사계절.

지은이: 여희숙 외,

그리고 엮은이: 강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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