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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정리하는 마음

by 오설자


따뜻해지자 집안 정리.

중간중간 이런저런 일로 외출을 해야 해서 정리는 몇 날 며칠.

책장에 있는 책들도 남길 책만 골라낸다. 책장 끝에 맞추어 정돈하고 나니 훨씬 깔끔하고 서재 같은 분위기가 난다.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것을 남기는 것’


백영옥의 어느 글에서 읽었나?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거나, 소중한 걸 남기는 거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지만

내게 귀한 것을 남긴다는 것은

쓸모없는 것을 버리는 것보다

더 마음을 담은 정리 같다.


원래 뭔가를 시작하면 일이 커지는 법이다.

섣불리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옷을 정리하고 책을 정리하고 쓰지 않는 프라이팬과 베란다 장에 오래된 이불과 커피 포트 드라이기 프린터 의자 같은 것을 내놓고 보니, 어마어마하다.

이렇게나 많은 짐을 싸 놓고 살고 있었구나. 업체에 신청했더니 삭 다 가져간다. 헌 물건값을 안 주어도 가져가기만 해도 고마워진다.


잡동사니를 다 버리고 나니 묵은 체증이 삭 내려간 것 같아 개운해진다. 그래도 버릴 것이 많지만 앞으로는 더 들이지 말고 버리며 살아야겠다.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 자꾸 들락거린다.

정리된 책장 앞에 서서 ‘흠흠‘ 만족한 눈길을 보낸다.


정리하면 빈자리가 생기고

그곳에 좋은 기운이 들어오고

좋은 기운은 좋은 일을 불러온다.


공부도 일도 정리가 반.

옷도 살림도 줄여나가기로 한다.

한 권 사면 한 권 버리기.

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인 듯하다.

읽고 싶은 책은 또 사들일 테니

얼마 없으면 다시 책이 넘쳐날 것이다.


카렐 차페크가 쓴 <평범한 인생> 속의 포펠이 떠오른다. 언제나 정돈된 삶을 살던 주인공은 더 이상 정리할 것이 없다고 여겨지자 그의 삶을 정리하기로 한다. 죽어가는 마당에 평범하게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는 글이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어린 시절 본 이웃 노파의 마지막 순간에 ‘삶을 정리’하고 평화롭고 환하며 성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을 되살린다. 크든 작든, 어떤 형태의 정리든, 주변을 정리하는 일은 성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안을 삭 정리하고 나니

마음속 어지러운 풍경이

포플러가 나란히 심긴 죽 뻗은 길처럼

뻥 뚫린 듯 시원해진다.




이런 길이 마음속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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