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역설 2가지
새롭게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 설레면서 걱정이 앞섰다.
내 예상대로 처음부터 결코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 어울리기에
나는 너무 나이차이 나는 언니였으니까.
15살 이상 많은 건 기본이고
교수님과 연배가 비슷한 경우도,
심지어 강사 선생님들보다는
내가 더 연장자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감정적인 소모를 하기에는
두 아이를 키우며 일도 해야 하며 가사도 해야 하는
엄마이자 노동자이자 주부였다.
어쩌면..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편했다.
나는 이것을 시간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때로
삶에 있어 생각지 못한 큰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에는 좋기만 한 일도, 그렇다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로 만난 여러 명의 20대는
빠르긴 했지만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웃긴 이야기지만 팀과제를 위해서
번호를 교환하는 줄 알고 전화를 내밀기에
번호를 찍으려는 데 10년 이상 어린 대학원 선배의
당황해하는 표정이란..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는...
무튼 잊을 수 없는 흑역사 중 하나이다.
그네들은 QR코드로 카톡 프로필을 교환하는 것
그 이상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문뜩 나의 20대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빨랐지만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아
나의 20년 전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다.
"그래 맞아. 나도 그랬어."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되어
되돌아보니 이해가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김종원 작가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괴테의 시>
그 서문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장 지혜로운 인생은
나라는 존재와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삶
그래 맞아. '나'라는 존재와 잘 어울려야 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의 20대를 통해서
그때의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더 알아가고 싶다.
그때, 진짜 20대였던 그때
나라는 존재와 어울리지 못했던 삶이
그 결핍이 결국 40이 되어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나'가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그렇지만 이제는 들을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남겨보려 한다.
나는 이것을 또한 시간의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서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그때가 지난 다음에서야 그 상황을 알게 되는
이 모순을 말이다.
사족:
지금의 저는 오지라퍼 아줌마지만
한때는 '작가'가 되고 싶어
새벽 감성을 헤매던 문학소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가'를 꿈꾸고 있죠.
늦은걸가? 하다가, 아니 그때
힘들다고 놓아버렸던 것들이
지금도 저를 누르는 것을 느끼며
이번에는 놓지 않으려 용기를 내어봅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렇게 주문을 걸면서요.
지금 이 순간 삶의 무게가 힘들다면,
힘을 내라고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저에게도 요.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으니까요.
이상 이루다 T였습니다. 감사합니다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