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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l 18. 2022

낡은 신발

오랜만에 가게에 들린 엄마는 밖에서 행실  거지처럼 해다니지 말라며 닥달이다. 내가 신고있던 신발을 보더니 혈압이 20쯤은  높아진 표정이다.


나는 으레 “일 할땐 편한게 최고지뭐~”하며 내 할 일을 하지만 내 마음도 엄마 못지 않을 때도 있다.


지금 신발은 5년전쯤 여자친구가 선물로 사준 기억이 있다. 신발 사주면 오빠가 도망가나 안가나 봐야겠다며. 그러곤 지가 도망 가놓고서는.


요즘 입는 옷들은 대부분 재래시장에서 5천원에서 1만원 정도를 주고 사입는다. 나한테 제격이다. (뭘 입어도 간지가 나기 때문이다,,는 뻥이고, 시장 옷들이 헐렁헐렁 한 것이 참 편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땐 평상복 보다 정장이 훨씬 많았다. 매일 의무적으로 정장을 입고 출근을 해야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됐지만.


과거에 만나던 자친구  몇몇에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3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가방은 우습게 사줬던  같다. 돈이 많거나  친구들을 죽을만큼 사랑해서? 아니다.


소몰이를 하듯 분위기를 몰고간다.  사주는 내가 몸쓸 남자친구가 되는, 그런 그림이다. 대부분 그랬다. 내가 여자를 잘못 만난거라고? 그것도 아니다. 맑고 선한 친구들이였다.


그런데 모르겠다. 명품에 환장한 친구들도 분명 아닌데, 내가 본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의 척도를 그걸로 시험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은 들었던 것 같다. 빠듯한 서울살이에 능력이라곤 개나 줘버린 내 책임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 갈 일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딸인 이민아 목사는 20대초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상당히 일찍 했다. 선생께서는 앞날이 불보듯 빤히 보이니 극구 말렸지만, 결국 성화에 못이겨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그리고 불과 몇년 지나지 않아 이민아 목사는 이혼을 하고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어령 선생께서는 돌아온 딸을 보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민아야, 너는 이제 쉬러 온거니까.’라고 생각하며 딸의 아픔을 한발치 떨어져서 어루만져 줬다고 한다.


결국 돌아갈 곳은 부모님인 걸까. 아버지 장례를 다 치르고, 회사를 그만두고, 이혼을 하고, 나도 결국 혼자있는 엄마에게로 돌아갔다. 작년 우울증으로 제주도에서 한달을 머문 후 돌아간 곳도 엄마 곁이였다.


아무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울었다. 너무나 조용해서 방안의 공기마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우리 엄마도 그런 생각을 했을런지 모르겠다. ‘우리 아들 기헌이, 이제 쉬러 왔으니까 편히 쉬어.’라고.


어제, 오늘 유명 월간 잡지와 인터넷 저널에 이력서를 내놨다. 책을 쓰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의 지식을 집약해 짧막하게라도 사람들에게 빈번히 읽힐 수 있는 글들을 쏟아내고 싶어서다. 억지로라도 그래야겠다. 기억이 계속 희미해지고 붓의 중심이 기울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어령 선생께서 딸 이민아 목사를 위했던 마음으로, 이민아 목사가 아버지 이어령 선생님을 생각했던 마음으로, 그 사랑의 균형이 우리 엄마와 나에게도 오롯이 전달 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쁜 마음으로, 또다른 글의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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