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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pr 02. 2024

사람이 반갑다

가끔은 퇴근 후 가족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오늘처럼 달빛이 은은하게 수놓은 퇴근길을 거닐때면 더욱 그러해진다.


분명 퇴근 후 와이프가 정성스레 차려준 저녁밥을 먹으며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긴적도 있었지만, 내가 다 걷어차 버린 꼴이 됐다. 단세포적으로 생각한다면, 모든 이별은 남자 탓으로 돌리고 싶다. 몇번이고 참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조차도 영글지 못해 그렇게 하진 못했지만.


혼자 사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런 쓸데없는 잡생각이 수시로 들곤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바뀌는 건 없는데. 그래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일부러 먼길을 돌고 돌아 집으로 향하는 날이 많다. 차를 끌고 다니면 금방 도착할 수도 있는데, 빈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그렇게 달갑지 않아서 터벅터벅 한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오늘은 조카가 뭐하냐며 뜬금없이 카톡이 왔다.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누군가의 연락이 이토록 반갑다. 쓸모를 다해버린 나에게 오는 연락이라곤 이젠 스팸 밖에 없으니 '사람'의 연락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조카들이 어릴 적, 매일 보고 싶어 서울에서 포항까지 주말이면 KTX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간 기억들이 많다. 지금은 조카들이 이토록 커서 사춘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내 기억속의 조카들은 만화 속에 등장하는 '빨강머리 앤'처럼 언제나 순수하고 제 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내일은 아버지 기일이라 두어달만에 누나와 조카들이 안동에 온다고 한다. 가게를 마치고 집에 가면, 반갑게 맞이해 줄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 특별한 내일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남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하루겠지만, 나는 이런 하루의 날이 특별해진 삶이 되버렸다.


귀에는 R.Kelly의 <Home for Christmas>가 흐르고 저 멀리 아파트 불빛이 눈앞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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