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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Mar 26. 2024

폐지나 주워야겠다

과거 회사 선배가 연락이 와서 두시간 가량 통화를 했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아무래도 너무 일찍 고향에 돌아온건 아닌지 하는 후회다. 사람들 누구나 조그마한 후회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지만, 나는 서른 중반에 너무 일찍 서울의 삶을 포기하고 돌아왔고 그 결과로써 이혼과 우울증, 사업의 실패 등으로 쓴맛을 보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덧 내 나이 마흔이 훌쩍 넘어버렸다. 다 잘될 줄 알았는데. 때로는 열심히 공부하고, 그 결과로써 멋진 기업에 입사도 했는데, 모든 환희의 순간들이 물거품이 되고야 만 것이다.


얼마전 <나의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주인공을 맡은 염창희 역의 이민기는 그런다. 어머니가 갑작스레 죽고 홀로남은 아버지가 재혼을 안했다면 본인이 모시고 살았을 거라고. 천방지축 인줄만 알았는데, 자식으로써의 진면모를 우리에게 보여준 셈이다.


나와 오버랩이 됐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를 홀로 두기 싫어서 그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 무작정 사표를 던졌더랬다. 부장님과 국장님은 몇번의 만류 끝에 나를 팀장으로 진급시켜 줄테니 남으라고 했지만, 번복하기에도 미묘한 상황이 되비런터라 그대로 짐을 싸들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러고 6년여가 흘렀고, 나는 생각했던 바와는 다르게 블루칼라로 통용되는 직종으로 옮겨 전혀 색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시골 장터에서 돈까스를 팔며 가게 앞 폐지를 주어가는 할머니들과 "그 폐지는 제꺼에요!!”라며 다투는 적도 있고, 술취한 아저씨들과 실랑이도 벌이며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역사나 과거에 '가정(If)’은 없다라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라면, 하는.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


예전 KBS토론에 출연해 국회의원들과 장관들 면전에서 쓴소리를 날린 기억이 있다. 제발 부자들은 가만 놔두라고. 그들을 위한 조세 조정도, 어떠한 정책도 펴지 마시라고. 그들은 가만 놔둬도 잘 산다고.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는 생방송에서 말이다.


방송 후에 질타도 많이 받았지만, 속이 시원하다는 소리도 꽤나 들었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협의 건으로 한국은행 본점으로 가서 우리나라 금리 조정을 하는 위원님을 만나뵀다.


나는 말했다. 시중금리 동결시켜 달라고. 금리조정위원회에서 의견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달, 공교롭게도 금리는 동결이 됐다고 뉴스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 나는 또 아무런 일이 없는 듯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삶을 반복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처럼. 매 정각에 도착하는 지하철과 버스도 그대로였다.


나는 신을 믿진 않지만, 그들이 개개인의 삶을 정밀하게 설계해 놓은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처럼 시대를 잘 타고난 이들은 벗기만 해도 돈벌이가 된다. 가슴골과 허벅지 살만 드러내도 뭇 남성들이 환호를 하고 별풍선을 마구 쏘고 협찬을 한다. 그제에는 한 평범한 직장인이 대출을 받아 2억 가까운 돈을 별풍선으로 쏘다가 빚을 감당치 못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동시에 그 별풍선을 받은 여성 BJ는 오늘도 아무 죄책감 없이 벗으며 별풍선을 구걸하고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참 쉽다. 내가 아니더라도, 내 앞세대 어르신들은 전쟁통과 보릿고개 시절을 넘으며 배고픔에 삶을 고단하게 유지했는데, 요즘은 단순 산수인 1 더하기 1을 몰라도 이만큼이나 화려하게 살아간다. 도덕적 책무나 최소한의 상식도 자본 앞에서는 설 자리를 잃는다.


병원에 누워서 사경을 헤매는데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걱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제 부모 장례식장에선 손님이 많이 올지도 모르니 몸매가 잘 드러나야 된다며 레깅스를 입고 장례를 치르는건 아닐지 걱정이다.)


시대를 적확하게 읽어내며 자본에 유린 된 사람들의 태도는 바뀔것 같지 않으니, 나는 어디쯤에서 그만해야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는 자기들끼리 잇속 챙기려 편가르기나 하고 있고, 보통의 사람들은 1원 하나 손해 안보려 전전긍긍 하며 사는 이런 삶. 그저 나 혼자서만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파랑새를 찾고 있는 팔푼이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5년, 10년 뒤엔 뭐가 나아질까. 글쎄다. 위정자들은 본인들만 아는 계략들로 벼락부자가 되어 있을테고, 우리는 또 인스타그램에 음식사진이나 올리고 있겠지.


모르겠다. 가게 손님이 뜸한 오늘같은 밤엔 시장 귀퉁이를 돌며 폐지나 주워모아야겠다. 비 오는 오늘같은 날은 폐지에 묻은 물기로 인해 값이 꽤나 나갈지도 모르겠다. 계속 몸을 움직이면, 슬픈 마음이 사라져서 좋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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