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기헌 Apr 23. 2024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남편 연봉으로 1억을 바란다면 본인 연봉은 9천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남편 학벌이 서울대이길 바란다면, 본인 학벌은 이화여대 쯤은 됐으면 좋겠다. 남편 직업이 의사이길 바란다면, 본인 직업은 판검사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남편이 서울에 10억짜리 아파트를 해온다면, 본인은 9억 정도의 혼수는 준비할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남편이 영어를 능수능란 하게 하길 바란다면, 본인은 불어나 일본어 정도는 능수능란 하게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혐오의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공정과 정의를 흠모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유불리를 따져가며, 유리한거엔 큰소리 치지만 불리한거엔 입을 꾹 닫는다.


남녀관계, 직장 상하관계, 정치의 여야관계, 모두에서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객관화 해서 볼 수 있지만, 막상 그 속에 자신이 자리해 있다면 평정심을 잃게 된다. 그 속에서 공정하면 할수록 왠지 자신이 손해보는 기분이 드는거다.


얼마전에 서울의 한 선배가 주변에 괜찮은 여성분이 한 분 계시다고 만나보라는 연락이 왔다. 그 분도 나처럼 돌싱이였다. 아이는 없었고. 그래서 서로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서 만나보기로 했다.


내 정보나 이력은 그 분께 미리 다 알려드렸다고 들었다. 나는 그 분에 대해 들은 건 하나도 없었고. 나 조차도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먹여 살리는거야 내가 하면 되고, 사람만 괜찮으면 됐지뭐‘ 하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분 카톡 프로필의 사진들을 보니 외모에 자신감이 충만한 분 같았다. 덩달아 인스타그램도 홍보를 해놨길래 링크를 따라가봤더니, 온통 외모와 몸매 과시에 혈안이 된 분 처럼 보여졌다. 골프도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골프를 치러 간건지 허벅지와 풍만한 볼륨을 드러내러 간건지 도통 알 길이 없어 보였다.


도저히 궁금함을 참지 못해서, 주선해준 선배한테 이 분 뭐하는 분이냐고 물어봤다. ”직장 다니다가 요즘은 쉬고 있다는 것 같던데?“ 하는 거였다.


요즘 사람들은 애초에 쉴려고 직장을 다니는건지, 제 마음대로 쉬었다 일했다 하는 분들을 보면 본인 능력이 좋은건지, 세상이 좋아진건지, 나 조차도 헷갈리곤 한다. ’백수‘라는 멸칭을 ’쉰다‘라는 은유로 둔갑하는 처세술도 한층 유연해진 듯한 사회 분위기처럼 느껴진다.


결국 안만나겠다고 했다. 외모 하나의 필살기로 어필을 하는 듯한 당당함이 내가 2~30대 였다면 모르겠지만 이제는 영 불편하다. 만나서 하룻밤 자고 섹스를 즐길수도 있을거다. 그러기조차도 귀찮고 따분해진 요즘이다.


어느덧 중년에 들어선 나는 앞서말한 공공의 상식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분에게 상식은 ’나는 예쁘니 너는 돈이 많아야 돼‘라는 명제가 더 어울릴 것만 같았다.


상식의 전부를 이해하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을 바라는 거다. 그 최소한은 물질이나 능력으로 상쇄하지 않아도 된다. 남편이 1억을 벌고 서울대를 나왔는데 본인은 쉬고 있는 상태라면, 그에 상응하는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반대라면 남자도 마찬가지의 마음을 가지면 되는거다. 종속 변수인 아이는 여자가 낳는다느니, 육아도 여자가 한다느니, 하는 그런 얘기까지는 여기서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결국 이렇게 해서는 한남충이니, 김치녀니, 하는 식의 서로에 대한 혐오가 나아질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니 저출산율 운운하며 부채질 하지 말고 서로 내버려두자. 그리고 해방을 허하라. 그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낭만이 자욱했던 앞선 시대는 저만치 물러나고, 지금 시대는 이러다가 종말을 고할것만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서 더 슬프다.


밀란 쿤데라는 <지혜>라는 잠언집에서 사랑을 이렇게 묘사했다. ”오랫동안 사랑을 떠나 있으면 차츰 사랑의 육체성과 물질성과 구체성을 상실하게 되고, 마침내 양피지에 적힌 아득한 전설과 신화가 되어 작은 금속사장에 담긴 채 인생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우리 시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게 됐다. 혐오가 사랑을 짓눌렀고, 자본이 사랑을 집어삼켰다.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지혜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들의 블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