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기헌 May 07. 2024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번 가보죠.”

몇달전 뉴질랜드를 잠깐 다녀왔다. 괜히 또 걱정할까 싶어 가족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마치 동네슈퍼 가듯 잠시잠깐 그렇게 다녀왔다. 아는 선배의 레스토랑 운영에 관한 얘기와 이민 문제 때문에 그 지역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이 후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고, 나는 그 사이에 생각이 또 바껴버렸다. 새로움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인데, 용기가 쉬이 나지 않는 거였다. 간들, 식당을 운영하며 받는 스트레스며, 그 나라 문화에 녹아드는 시간들은 어떡할거며, 외국인에게 취약한 연금/보험 문제까지도 걱정으로 스며들었다.


뉴질랜드의 대자연을 거닐며 유랑하며 책쓰는 삶이 가능할까 싶은 원초적인 의문이 다시한번 들었고, 그 의문을 현실에 대입하자 답은 쉽게 나왔다. 몇일전 엄마한테 이런 전과정을 얘기했더니 쓴웃음만 보인다. 진짜 혼자 이민 갈려고 했냐면서 말이다.


해서, 다시 정신을 다잡고 지금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새로움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할머니 시골집 옆 터에 폐허가 된 한옥집이 한 채가 있는데 그곳을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 번뜩여졌다. 물어보니 그 집 어르신은 일찌감치 돌아가셨고, 자제분이 있는데 얘기만 잘되면 저렴한 값에 그 집을 양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최대한 날 것 그대로 그 집을 보존해서 외국인들과 대도시에서 시골로 여행오시려는 사람들을 위해 숙소로 활용하고 싶은 생각이다. 허가는 날지,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이 불편해하진 않을지, 등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다음은 포항에 봉식당 2호점을 오픈하는거다. 두어군데로 후보군은 줄였는데, 보증금과 월세 등으로 기싸움 하느라 계약서를 못쓰고 있는 상황이다. 홀을 넓게 해서 판을 키울지, 작은 곳에서 배달만 할지, 포항에 살고 있는 누나네와 함께 고민을 하고 있다.


요몇일전엔 SNS에 아는 동생이 휴지에 편지를 적어 준 글이 예뻐 사진으로 찍어 올렸더니 여자친구냐며 묻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말했지만, 나는 이제 여자를 사귀지 않는다. 아니다, 못사귄다는 말이 더 적확하지만, 나도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자가 싫은게 아니다. 남자만 있는 끔찍한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에 대조한다면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등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인가.


언젠가 몇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친구가 있었는데, 한달이 지나도 내가 사귀자는 말을 도통 꺼내지 않자 어느 날은 술이 잔뜩 취해 되려 물어보는거였다. 오빠는 왜 나한테 사귀자 소리 안하냐며. 대강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런식으로 답을 했던 것 같다.


”안사귀면 계속 만날 수 있잖아. 사귀면 언젠가는 갈등이 불거질테고, 그러다 또 싸우다가 헤어질테고, 그럼 또 서로 저주하다가 영영 보면 안되는 사이가 되는데? 이렇게 뻔한 스토리인데 뭐하러 사겨, 그냥 이런 식으로 가끔씩 만나면 영원히 만날 수 있는데. 난 이제 아침 저녁으로 ’잘잤니?, 잘자!‘ 하는 기계적인 인사를 건네는 것 조차 부담되고, 기념일 때 마다 명품백을 사주고 고급 호텔에 드나드는 것도 싫어. 20년 동안 연애하면서 이런 걸 반복적으로 당했는데, 너 같으면 또하고 싶겠니? 결혼 준비하고 신혼여행 간답시고 전재산을 다 날려먹고 남은 거라곤 돌싱 딱지인데, 그건 더 하기 싫고. 암튼 뭐,, 꼭 사귀지 않더라도 한잔 하다가 서로 ’짜릿‘한 순간이 오면 섹스를 할 수도 있고, 그렇게 자유를 즐기는게 낫지 않니? 하하하~(ㅋㅋㅋ)“


술에 취해 반 장난스레 한 말에 앞에 있는 동생은 눈물을 보인다. 웃으며 우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한참을 달랬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새벽녘까지 춤추고 놀았다. 그리고 아침해가 뜰 무렵 해장국까지 섭렵한 뒤 우린 헤어졌다. 돌아선 뒷모습이 참 예뻤더랬다.


그 후에도 내 생각은 명료하다. 사람을 잃기 싫어서다. 잃지 않으려면 안사귀면 된다. 내가 잃은 사람들은 모두 사귄 뒤 헤어진 후 였다. 돌이켜보면 모두 사랑스럽고 좋은 친구들이였는데, 우리는 사겼다는 이유만으로 만날 수 없게 됐다. 영원하자며 사랑을 속삭였는데, 헤어진 후엔 서로에게 죽은 사람이 되버린 셈이다.


그런 우를 다시는 범하면 안될 일이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도 얼마남지 않은 나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좋은 사람들을 더이상 잃고 싶지가 않다.


중국에 한 젊은 여교사는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사직서를 내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동봉했다. ”세상이 그렇게 넓다는데, 제가 한번 가보죠.“


쓸모를 다한 길, 사람들이 미처 생각치 못한 길을 가는 거다. 내 마음도 그 여교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김영하 작가로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