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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Dec 25. 2024

성탄 저녁, 문득

가게 재료 하나가 일찍 동나는 바람에 이른 저녁부터는 ‘배민1’ 배달 부업을 오랜만에 해봤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여서 그런지, 우리 가게만 바쁜게 아니었나보다. 치킨집, 피자집 등등 단숨에 대여섯건의 주문을 받아 배달을 시작했고, 두시간 가량 운동삼아 뛰어다닌 후에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


배달지로 향하는 아파트 현관 사이로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제법 새어나왔다. 동네 마다마다에는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어둠을 밝혔고,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은 손을 꽉잡은 채 네온사인의 빛결을 따라 한참이나 걷는 듯 보였다.


나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면 택시 일을 마치고 오셔서 곤히 자고 있는 누나와 나의 머리맡에 선물을 몰래 두곤 하셨다. 아기자기한 필통, 물감세트, 철인28호 로보트, 둘리 인형 같은 것들을 받은 기억이 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산타의 존재 유무를 알게 된 나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지만, 지금도 아기예수에 대한 경외심과 설레임은 여전한 것 같기도 하다. 독거중년의 삶을 겨워내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해마다 찾아오는 크리스마스가 반갑다는 얘기다.


예쁜 트리 앞에서 산타로 분해 나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아버지가 살아생전 그랬던 것 처럼, 나도 누군가의 아빠가 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완전히 실패해버린 지금의 삶이 후회도 없고 미련 따위도 없지만, 굳이 하나의 소원을 빌라고 한다면 그러고 싶다는 뜻이다.


겨울 숲에, 봄 아닌 다른 계절이 오면 그때 즈음 이뤄질까. 예쁜 성탄의 밤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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