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악플러들에게

by 임기헌

얼마전 아는 동생과 술을 한잔 하는데 마침 안주가 떨어졌고, 본인이 배민을 통해 안주 하나를 더 시킨다고 해서 갈비찜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더랬다. 그러다 문득 그 친구한테 너 그동안 배민에 쓴 리뷰 내역 좀 볼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망설임 없이 보여준다.


수년간 쌓인 리뷰 중 대략 10개 중 7개는 별점1개. 더러는 사장과 다투는 글들도 보였고, 싱겁거나 맵거나, 배달이 늦었다거나 하며 악플의 내용도 다양했다.


”왜 이러는 거야?“하고 나는 물어봤다.

”맛이 없으니까“ 그녀는 대답한다.

”음...“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이 날 같이 먹은 갈비찜도 나는 너무 맛있었는데, 그녀에게 너 입맛에 맞지않았으면 그냥 아무 리뷰도 쓰지 말고 냅둬 오늘은, 하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주 두어병을 더 마시고 헤어졌다.


사람들은 본디 처음 만난 사람을 궁금해한다. 과연 어떤 사람일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그 결과로 우리는 혈액형을 가지고 분별을 해보기도 하고, 요즘은 MBTI로 그 사람을 분석하기도 한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나,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가질 때에 특히 상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진다.


이에 나는 ’상대의 배민 리뷰를 보시라‘하고 완벽한 해답을 드리고 싶다. 유튜브 알고리즘이나 그 영상에 남긴 리뷰를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리뷰들은 정보통신법상 본인이 직접 삭제하지 않는 이상 없앨 수도 없게 되어있다. 과연 거룩한 자유가 보장된 ’익명‘이란 고귀한 공간 뒤에서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혈액형이나 MBTI 따위와는 비견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진실을 엿볼 수 있을거라 나는 확신할 수 있다.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익명‘이다. 모든 리뷰는 익명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결단과 만행은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현대 시대라고 다를까. 수사기관에서 주요 증거로 다루는 대부분도 당사자들끼리의 녹취나 개인이 쓴 메모 등이다. 머리카락 보일까 꼭꼭 숨어있을 때만이 우리는 그 사람의 본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기습적일 수록 좋다. 회사 운영하시는 대표님들께서는 면접 때 양해를 구한 뒤 기습적으로 ”배민에 쓴 리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하며 제안 하는거다. 거절을 하면 면접 점수에 상당한 마이너스가 되는 것일테고, 그 또한 자유다. 연애를 하는 이성간에도 오빠, 자기야 하며 보통의 어느 날 배민 리뷰나 상대가 즐겨보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한번 들여다 보는거다. 온갖 극우 채널이나 여성들이 벗고 날뛰는 영상들로 가득하다면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럼 긴 말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훤히 보일거란 생각이 든다.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모든 플랫폼의 필명을 본명으로 하자는 법 발의는 왜 국회의원 그 누구도 하지 않는걸까. 신문고나 국회 게시판에 건의를 해도 묵묵부답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익명이라니까 이 바보들아!!


이 글을 쓴 나의 필명은 ’임기헌(경북 안동시)‘ 이다. 방구석 여포가 되어 온종일 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나의 친애하는 악플러들이여, 이렇게 우리 최소한의 본명과 사는 지역 정도는 드러내고 논쟁하자. 어떤가? MZ의 표현을 빌리자면 ”쫄?“


말많고 탈도 많았던 김영삼 정권 때의 ’금융실명제‘를 반면교사 삼았으면 싶다. 지금 은행에서 타인의 통장을 개설하거나 타인 명의의 금융거래를 한다는 걸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뒤돌아보면 성장통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리뷰실명제‘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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