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APEC 기간, 경주의 능을 따라 걸었다. 걷다가 지칠때면 고대 신라를 연상케 하는 곧은 기와 장식의 커피숍에도 틈틈히 들려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사람이 싫어서 매번 혼자 떠돌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는 모순에 빠진다.
폰 기기를 바꾸고 3천명이 훌쩍 넘어가는 연락처를 클라우드에도 남지않게 모두 지웠지만, 상대의 저장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흔적까지는 없애지 못하나보다. 연말이 가까워지니 안부 문자들이 곧잘 오는데, 모르는 번호라 오묘해지곤 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일까. 연락처가 있을 때, 그리고 없을 때, 중첩되었거나 얽혀있거나, 모를 일이다.
장사를 하면서도 평가를 받는게 일상이 됐고, 책을 출간해도 세간의 평가를 받아야 된다. 강의를 해도, 번역을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개인 SNS 게시물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온갖 욕설을 동반한 평가가 뒤따른다.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평가라 함은, 그 분야의 전문가나 스승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부터 심지어 범죄자, 망나니들에게까지 그 권한을 모두 부여한다. 폰만 있으면 그 모두를 평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전 하도 해괴망측한 소리를 들어서 의아했는데, 알고봤더니 초등학생이었던거다. '내가 10살짜리 친구랑 논리 운운하면서 싸웠던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기분이란.
사람이 싫다. 한 평생 살아오며 이처럼 싫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다른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싫다. 영글지 못한 나의 협소한 시야에는 온갖 혐오와 거친 단어를 쓰는 사람들 밖에는 보이질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대략 2010년도에 접어들며 우리 사회는 이 지경이 됐다. 잘잘못은 중요치 않다. 상대가 나락으로 갈 때까지 서로를 짓밟으면 되는거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겸손의 메아리를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교수, 법률가, 종교집단, 기업가, 사회지도층, 아파트 부녀회, 전통시장 등등. 서로 제 과시만 할 줄 알았지 어디에서도 그 메아리는 울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연말만 되면 '잘지내?'하며 물어오는 안부도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릴 뿐이다.
이상하지, 그럼에도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하니. 경주에 자리잡은 저 수많은 능의 왕들도 우리 따위들이 평가를 하고 있다니. 요즘 사람들에겐 평가가 아닌 폄훼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 사람들을 피해, 나는 또 걷는다.
다음 걸음에서는 폰번호를 바꾸고, 이 다음 걸음에서는 모든 SNS를 탈퇴하고, 마지막 걸음에서는 고향을 떠나 이사를 가는거다. 사람들을 피하고 피해 온전히 혼자가 되는 날, 나도 행복해질 수 있길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