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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l 25. 2022

퀸연아의 남자

'퀸연아'의 마음을 훔친 고우림 씨가 오늘 온종일 화제다. 워낙 세계적인 스타의 남자가 되었으니 그럴만도 해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화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대한민국 3대 도둑으로 등극 했다느니, 로또를 맞았다느니, 이제 돈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느니 등등, 온라인 기사와 댓글들은 조롱과 비아냥으로 고우림 씨를 생매장 시키고 있다.


민족의 근성, 그러니까 제 버릇은 역시나 남을 못주나 보다. 우리나라에만 유일무이 하게 존재하는 속담인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왜 딱 들어맞는 말인지, 살아가며 그 체감은 곱절로 느낄 수가 있다.


나는 과거에 연애를 하며 상대 부모님께 인사까지 드린적은 두어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한번은 30대 초반에 서울서 6개월 정도 사귄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가게 되었는데, 부모님 두분다 서울대 교수님이셨다. 당시 여친은 외국 유학중에 한국에 잠깐 들어와 있던 상태였고, 여동생이 한명 있었는데 그 친구도 서울대에 재학중이였다. 쉽게 말해 엘리트 집안이였다.


집도 도곡동에 위치한 타워팰리스 였는데, 당시 서울서 제일 비싼 아파트로 기억이 된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 아파트에 도착해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여자친구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정갈하게 차려놓으신 집밥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조심스레 물어오신다. 우리 부모님은 무얼 하시는지.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얘기했다. 저희 아버지 안동에서 택시기사 하신다고.  대답과 동시에 옅은 미소와 함께 분위기는 냉랭해지기 시작했다.


그 뒤 내 이력과 경력, 그리고 현재 직장의 연봉 등을 쭉 말씀 드렸더니, 나에 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셨다. 우리 아버지 직업에 대한 충격파가 너무 크셨나보다.


나는 결혼은 당장 생각이 없고, 내가 직장 생활 하면서 돈을 꾸준히 모은 다음에 여자친구 유학생활이 끝날즈음 생각을 해보려 한다고도 했다. 그렇게 차 한잔을 더 마시고 여러 이야기를 나눈 뒤 여자친구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여자친구와는 정적이 흘렀고, 술이나 한잔 하러 가자고 했다. 여자친구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그런다. 오빠 괜찮냐고.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뭐,, 솔직히 괜찮겠니.. 너희 부모님이 나 싫어하시는게 빤히 보이는데. 내가 할 수 있는것도 없고, 뭐 그렇네.. 하하.. 술이나 먹자"


여자친구는 그날 내가 자취하고 있는 거지 같은 집으로 가서 같이 술이나 더 먹고 자고 가겠다고 떼 쓰는 걸, 나는 극구 만류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누군가의 관계를 늘 그렇게 만든다.


그 뒤 그 친구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멋진 회계사가 되어 유능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살고 있다. SNS를 통해 훤히 들여다 보이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일도 없어졌다.


훗날 나는 결혼식 상견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들었었다. 이번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다. 나는 엄마를 고향에 혼자 두기 싫은 마음에 회사를 그만뒀고, 고향에 돌아와 돈까스를 튀기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조건으로 결혼식을 올린게 신기할 정도였다. 사랑의 힘 만으로 밀어붙혀 한 결혼은 결국 1년만에 이 사달이 났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 결과로 멋진 기업에 취직해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나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   알았는데,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였다. 41년을 살아보니 그렇다. 태생은 바뀌질 않는다.


나는 이렇게나 나를 멀쩡하게 낳아주고 길러준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나 자랑스러운데, 태생이 잘난 사람들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나보다. 그래서 이제는 수긍하며 살게 됐다. 내 분수를 알고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거다.


'퀸연아'를 가진 고우림 씨 마음을 조금은 알거 같아 이렇게 끄적여 본다. (고우림 씨야 워낙 멋져서 잘 이겨내겠지만.)


‘사랑에 국경은 없다'라는 말에 현혹 돼 우리는 가끔 현실과 동떨어진 로맨스를 꿈꿔 보기도 한다. 그 허황된 꿈속에 있는 이들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으로 분한 배우 한석규가 봤다면 이 대사를 똑같이 외쳐줬을 것 같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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