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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ug 01. 2022

호구의 사랑

나는 외국에서 공부를 할 때나, 혹은 회사 출장 때문에 먼 나라에서 생활한 적이 꽤 있다. 그러다보니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걔중 우리나라랑 판이한 문화를 꼽으라면 '더치페이'다.


외국은 자연스럽다. 처음 보는 소개팅 자리에서도 더치페이가 일상화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니다. 일단은 어느 자리든 남자가 지불을 한다. 남녀 분란을 조장하려는게 아니라 그렇다. 일단은 웬만하면 남자가 낸다.


그런데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게 아니다. 여성들, 그러니까 그녀들끼리 왔을때다. 오늘, 가게에 여자 손님 둘이 왔는데 하필이면 총 금액이 홀수가 나왔다. 그러더니 서로 50원도 양보하기 싫어 50원까지도 각자 카드를 긁는거다. 그리고 아무렇치 않듯, 히히낙낙 거리며 커피 마시러 가자며 길을 나선다.


나는 생각하게 된다. 저 둘은 왜 만나는 걸까,, 하고. 친구한테 10원짜리 하나 양보하기 싫은데, 그저 둘이 예쁜 얼굴 들이밀며 인스타그램 용으로 만나는 사이는 아닐까 싶어진다.


그들 중 서로 누군가 먼저 죽으면, 저승 갈 쌈짓돈 조차 아까워서 어떻게 쥐여줄까 싶다. 뭐 그래도 괜찮다. 그녀들이 서로에겐 아끼려해도, 결국엔 돈 많은 호구 남자 하나 무는 건 식은 죽 먹기 일테니 말이다.


근데 집안에 물려받을 재산 한푼 없는 나는 왜 호구가 되었을까 싶어지기도 하다. 억울하다. 돈 많은 놈들을 물어 뜯지, 왜 뭇 여성들은 평생에 걸쳐 날 물어 뜯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여기저기서 누군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바뀌는  없다. 팬티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치맛  허벅지살을 드러내고 가슴골을 펼쳐 보이는 여자들을 보면, 우리는 오늘도 호구가 되기 십상이다.


서정주 시인은 <격포우중>에서 “떠돌이 창녀 시인 황진이의 슬픈 사타구니 이야기 했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호구와 창녀가 만나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의 정체성은 어디로 흐를까, 하는.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 사는 세상은 호구, 그리고 창녀가 너무 많아서.


더불어 언제나 그랬듯, 듣기 싫은 소리는 모두가 본인은 이해당사자가 아니라며 당당히 발뺌을 한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아, 이건 알겠다. 나는 여전히 호구라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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