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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ug 04. 2022

선택, 그리고 또 선택

살며 무수한 선택지 앞에 놓이게 된다. 얼마전 망팔(望八), 그러니까 여든을 바라보고 계신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선택지는 현재도 진행형임을 느낄  있게 됐다.


나의 경우 학창시절의 선택은 차치한다손 치더라도, 인생의 결을 좌지우지 했던 선택은 직장에서부터 시작 됐던 것 같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부터 대기업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실력도 안됐거니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엘리트들 틈에 끼여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중견기업 인사팀 쪽에 지원을 하게 됐는데 운좋게 합격이 되어 1년여간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개략적으로 기업이 운영되는 틀과 개념 같은 것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준비가 될 무렵 또다른 기업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는 기계적으로 준비를 했을 때였다. 자격증은 물론, 토익이 성행을 할 때, 만점을 받았더랬다. 전국에 만점자가 10명 내외였던 시기였다.


해서, 당시 여차저차 해 우리나라 1등 경제언론사인 매일경제와 한국경제신문사에 동시에 합격을 했다. 나 따위가. 것도 두군데에 합격을 하고야 말았다.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한군데는 오너 경영 체제였고, 또다른 한군데는 기업 자본이 흘러들어온 전문경영인 체제였다.


여타저타 할것도 없이 나는 MBN을 끼고 있는 매일경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자랑이 되기도 하며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10년 차가 될 무렵 사직서를 냈다. 와중에 엄청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그 결과로써의 완결은 사표였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내가 한국경제신문사에 갔다면, 하는. 거기서 어떤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릴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모를 일이다. 과거나 미래에 가정을 한다는 건, 정말로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즈음 아버지가 결국 돌아가셨다. 처음엔 어딘가 몸이 여의치 않은 아버지를 데리고 아산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대뜸 췌장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동시에 수술을 할꺼냐 말꺼냐 하는 담당 의사선생님의 재촉이 있었다. 마치 애완견 수술을 하듯 아무렇치 않게, 빨리 결정하라며.


'니들 같은 일개 환자를 봐줄 틈이 없으니 빨리 결정하라' 이렇게 들렸다. 적어도 내 귀에는. 그래서 어쩔수 없이 수술을 했다. 보험이 안되는 터라 내 퇴직금까지 모두 당겨서 8천만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나는 빚더미에 앉았고, 아버지는 수술이 끝난 뒤 6개월간 끙끙 앓다가 돌아가셨다.


뭐 누굴 탓할까. 아버지는 날 사지멀쩡하게 너무 잘 키워주셨는데, 그 보답을 못한 내 탓인 뿐인거다. 그래서 너무 화가 난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내가 젊은 친구들한테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이유도 똑같다. 결국엔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어서다. 어른들은 무조건 공부를 닥달하지만, 그 옆 어딘가에서 그저 부모의 자본을 탐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낫다는 것이다.


살인을 하고, 성추행을 하며, 기초 교육을 못받아도 아무렇치 않듯 떵떵거리며 잘사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멀쩡히 교육을 받거나 양식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게 그리 많지가 않다 이제.


저마다 잘났고 위세를 떨치기도 한다. 이 모든 걸 설정해 놓은 하늘 위의 어린 신들이 설사 다음 세상에 또 살꺼냐 나에게 물어온다면, 나는 당연히 온 힘을 다해 '빡큐'를 날릴거다. 이번 세상도 진작에 알았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되는데, 어쩌다보니 태어나서 거지같이 살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명확하다. 내가 그나마 열심히 해서 그간 살아오며 이룬게 있다면,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누군가의 앞에서 발가 벗은 채 쇼를 펼쳤던 것 뿐이다. 정말이지, 그것 뿐이다 내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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