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기헌 Aug 06. 2022

‘꽃부리 영(英)’에 ‘복 우(禑)’

지난 한주 동안은 끙끙 앓았던 덕에 술을 한잔도 안마셔서 그런지 새벽 2시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게 됐다. 잠든 시간은  10 즈음. 남들 잠들 시간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 셈이다.


새벽녘 잠에서 깨면 사과쥬스를 한잔 들이키고 노트북을 편 채 무작정 글을 써내려갔다. 고요한 새벽녘에 비 까지 종종 내려줬던 터라 마치 누군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듯, 편하게 기교를 부릴 수 있었다. 잠에 취한 채 언어도단의 밑그림에 유치한 글의 농간 일 수도 있지만, 지난 일주일은 그렇게 흘겨 보냈다. 원고 120매 정도를 그렇게 채워 나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고, 잔병 치레를 말끔히 한 나는 정상의 생활 패턴으로 돌아왔다. 다시금 기상 시간은 아침 6시로 돌아왔고, 게으름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보통의 날로의 복귀를 기념해 노트북과 책은 저만치 물리고, 오랜만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켜고 쇼파에 들어누어 TV를 켰다. 얼음을 가득 넣은 미숫가루는 덤이였다. 그리고 간만에 드라마 몰아보기를 다시 시작해야 될 거 같아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이상한변호사우영우>를 1회부터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폐 환자의 신파극이겠거니 생각을 했다. 동정과 서사를 주입해 눈물샘을 짜내는, 뭐 그런 드라마겠거니 하는 생각. 그런데 아니였다. 신파는 커녕 서사롭지도 않았다. 근래 종영한 <우리들의블루스>나, <나의해방일지>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극중 주인공인 우영우는 첫 출근한 로펌 회사 회전문 앞에서 망설이며 다음과 같이 혼잣말을 하며 자책한다. “내 이름은 우영우. ‘꽃부리 영(英)’에 ‘복 우(禑)’, 꽃 처럼 예쁜 복덩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영리할 영(怜)에 어리석을 우(愚)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회전문도 못 지나가는 우영우. 영리하고 어리석은 우영우.”


그리고 법정에서 의뢰인을 변호하며 판사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저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만, 법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건 여타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라며 판사를 감동 시킨다.


모르겠다. 아직 초반밖에 보질 않아 드라마의 얼개 조차도 이해를 못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드마라 범상치는 않아 보인다. 무심코 본 드라마에서 1회에 눈물샘을 2번이나 자극 했다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우영우 곁을 맴도는 고래와 '우영우'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


1887년 영국의 존 랭든 다운 박사는 지능이 낮은데 특정 분야에서 천재성이 보이는 이들을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라고 했다. 드라마에서 우영우가 자신의 이름을 ‘영리할 영(怜), 어리석을 우(愚)’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작가가 ‘이디엇 서번트’에서 따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교육, 복지 등등 어느 하나 멀쩡한 곳이 없다. 그래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너무' 이상해서, '덜' 이상한 우영우에게 되려 위로를 받고 있는건지도 모를 일이다.


꽃 처럼 예쁜 복덩이인 우영우 변호사가, 영리하고 어리석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우영우들의 무운(武運)을 빌어주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선택, 그리고 또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