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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ug 10. 2022

인연(因緣)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오늘 가게에 찾아오셨다. 내가 요즘 친구며, 선후배며 죄다 전화도 안받고 연을 끊고 살고 있으니 살아는 있나 궁금해서 들리셨나 보다.


이 형님과는 6살 터울인데, 내가 서울로 떠나기전인 20대 초반부터 친하게 지내온터라 참 많은 기억이 있다. 그 뒤로 20년이 흘렀고, 참으로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됐다. 서로 외모는 그대로라며 인사를 건넸는데, 나는 내심 오랜만에 보는 형님 얼굴의 주름 진 굴곡 사이로 그간의 역경이 흥건히 들여다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은 돈 이야기로 흘러간다. 나도 이 형님 형편을 잘 알고 있고, 형수와도 꽤나 친하게 지냈었다. 딸이 둘 있는데, 애들도 어릴 때 자주 본 터라 오랜만에 봐도 낯설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얘기는 이어졌다. 어머니가 수술을 해야 되는데, 간병비며 병원비며 도무지 감당이 안된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대리운전도 하는데 뭐하나 나아지는게 없단다.


나는 말없이 가만히 계속 들었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현금 100만원을 건네 드렸다. "형님, 동생이 이렇게 돈 건네 드리는게 버릇없이 보일 수도 있는데,, 제가 지금 돈 한푼도 없다고 하면 순거짓말인거 잘 아실테고, 그런데 저도 어머니랑 누나네를 아직은 좀 보살펴 줘야 되는 입장이라 그렇게 넉넉하지가 않아요. 이 돈은 그냥 제가 그동안 애들 용돈 한번 못줬는데, 그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아요. 다른 뜻은 없어요."


그러자 형님 눈시울이 붉어진다. "진짜 쪽팔리고 미안타 기헌아"하며. "요즘 진짜 애들만 없으면 죽고 싶다"라고 덧붙힌다. 나는 왠지 그 마음을 잘 알것 같았다. 나는 항상 죽고 싶은 마음 뿐이니, 그 말이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건넸다. "그래도 형님은 애들 둘이나 다 키워놨잖아요. 저는 엄마 돌아가시면 이제 저 혼자에요. 저 이혼 한 거도 모르셨죠? 저 같은 사람은 나중에 아파 누으면 문병 올 지인이나 가족도 한명 없어요. 그러니까 저를 보면서 희망을 가지셔요 형님. 하하~"


형님은 얘기한다. "그래도 기헌이 너는 큰 아파트에 혼자 살고 외제차도 끌고 다니는거 보니 보기 좋다"라며. 나는 또 마지못해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형님, 제가 35평이나 되는 집에 혼자 살고, 1억원 짜리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건 돈이 여유가 넘쳐서가 아니고요,, 남들한테 최소한 누더기 처럼은 보이기 싫어서에요. 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는데, 겉모습까지 여느 사람들에게 너덜너덜 해진 누더기 처럼 보여지면 저희 엄마가 너무 안됐잖아요."


"...................."


술도 없이 커피 한잔을 갖다놓고 중년의 아저씨 둘이 이토록이나 감성 충만한 대화를 나눴더랬다. 것도 대낮에 말이다.


사는게 여전히 뭔가 싶다.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그리워 할 사람이 있을만도 한데, 이젠 그 조차도 없는 걸 보니 삶이 정말로 종점을 향해 가고 있나 보다.


피천득 선생님께서는 수필 『인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워 하면서도 한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평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만나고 살기도 한다.'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결국 평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만나고 꿋꿋이 살아가는게 내 팔자소관 일지도.


오늘은 온종일 비가 와서 가게 홀 바닥이 흥건히 젖었다. 때마침 비는 그쳤고 이렇게 하루를 또 흘겨 보냈다. 이제 마감 청소를 하고 퇴근 준비를 해야겠다. 청소를 하는 동안에 들을 노래는 김민종의 『인연』으로 골랐다. 볼륨은 '23'정도가 적당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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