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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진저 Sep 21. 2024

일의 배신

일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번 달 카드값 나가고 나면 다음 달까지는 어떻게든 되겠네.’


  나는 잠이 다 깨지 않은 채 머릿속으로 빠르지도 못한 계산기를 두드렸다. 일어나자마자 생활비 계좌를 확인하는 일은 습관이 된 지 오래다. 긴 명절 연휴의 시작과 함께 입금된 작업비. 잔액 확인 후 마음속에 잠시 일던 안도와 감사에 냉소와 씁쓸함이 끼어든다. 그건 명절 보너스가 아니다. 일한 만큼의 보수이다.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이 세금 3.3%를 제하고 십 원 단위까지 맞춘 금액. 순간 프리랜서의 서러움이 아침잠을 말갛게 쫓아냈다. 정확하게 말해 프리랜서 남편을 둔 아내의 서러움이었다. 서러움은 다시 불평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조금 일찍 받았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감사해?’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프로젝트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이르게 입금되는 일은 굉장한 배려였다. 알고는 있지만 마땅하게 받을 것을 받는 일에 절로 감사하는 나의 태도가 순간 비굴해 보였다. 이 비굴함이 나의 궁핍함과 절실함에서 오는 ‘찌질한’ 감정임을 잘 알기 때문에 그런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하게는 그런 나의 처지가. 나는 엉뚱하게도 나를 배려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영상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 쓰이는 음악을 작곡한다. 사람들은 흔히 ‘방송 쪽’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 분야에서 제때 보수를 받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다행히 임금 체불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생각해 보니 두어 번 있다), 속앓이가 싫어 차라리 잊어버릴 때쯤에야 연락이 오는 거래처도 있었다. 그런 곳일수록 ‘고작 몇 푼 떼먹지 않는다’, ‘바빠서 깜빡했다’ 등 대수롭지 않은 태도였고 상대의 당당함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 ‘몇 푼’에 우리 생계가 걸려 있으니까. 이런 일이 쌓일수록 남편은 단단해졌다. 아내의 채근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제 남편은 돈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일을 피하지 않는다. 남편의 성향을 봐도 그렇고 업계 분위기를 살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상업예술 분야라지만 어쨌든 ‘예술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돈을 입에 올리는 일은 모두 볼드모트를 언급하는 것처럼 꺼리는 편이었으니까.


  보수는 기대보다 적고 또 늦을 때가 많았지만 남편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연락에 늘 감사했다. 몇 달 일을 쉰 뒤라면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더 반가웠다. 일할 때는 힘들지만 일이 없으면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프리랜서의 운명이 아닌가.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놀 때도 일하는 게 프리랜서야.” 남편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매일 출근할 필요가 없는 프리랜서지만 욕심껏 일하고 싶다고 일거리를 맡을 수도 없었다. 일 년에 몇 번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남편은 자신에게 온 기회에 감사했다. 프로젝트가 잘 돼야 자신이 잘 된다고 생각했고 커리어가 쌓이면 돈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이며 알게 된 선배의 얘기 때문이기도 했다. 머지않아 달콤한 열매를 맛보게 될 거라는 그 선배의 말이 그저 자기 자랑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업계 상황은 예전과 달라졌고 우리의 상황은 기대만큼 달라지지 않았다. 큰 기대가 문제였을까, 막연한 믿음이 문제였을까? 어느 쪽이든 일을 향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작년 5개월 남짓 남편은 일을 쉬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바쁠 땐 잠이 부족할 정도로 휘몰아치고 일이 없을 땐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는데 이번에는 불안감이 생각보다 컸다. 그동안 롤러코스터 같은 수입이었으나 그럭저럭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40대가 되며 이 분야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고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순수할 수는 있어도 순진해서는 안 되는 나이가 됐다고 찬물 한 양동이를 들이붓는 듯한 기분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남편과 나는 우리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했다. 이리저리 궁리해 보아도 당장에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을 뿐 위기가 우리를 잠식하기 시작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당혹스러웠다. "우리가 너무 순진했나?" 자책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지금껏 지나온 여정을 되짚어보며 무엇이 문제인지,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지 밤낮없이 대화했고 문제의 핵심을 깨달았다. 우리는 외부에 상당히 의존적이었고 생각보다 좁은 ‘이 바닥’에서 눈치를 보느라 지나치게 수동적이었다. 그러면서 누군가 기회를 가져다주기만을 기다렸다. 장시간의 대화 끝에 앞으로는 ‘우리의 목줄’을 더는 외부에 스스로 넘겨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다고 당장에 바뀌는 건 없었지만 프리랜서에게 ‘안주’는 사치임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뒤늦은 깨달음이 안타까웠지만 적절한 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외부환경에 매달리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블로그, 유튜브, 글쓰기, 개인사업, 인맥 넓히기 등등 온갖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정답을 모를 땐 소거법이 도움이 된다. 파종할 때 씨앗 하나만 뿌리는 농부가 어디 있을까? 할 일도 없겠다, 우리는 나열한 아이디어를 전부 실행으로 옮겼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느라 에너지가 분산됐지만 거친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맞는 모습으로 다듬어갔다. 지난 1년 동안 남편은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개인사업자도 냈다. 브런치에 글을 올렸고 한 후배와 플랫폼을 만들어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다. 원래 하고 있던 유튜브 채널도 다시 손 봤다. 이와 동시에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다녔다.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극적인 결과가 있길 바라지만 아직 과정 중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조급해질 때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를 상기하며 서로를 격려한다.

      

  어느 날 불쑥 찾아온 회의감과 배신감은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일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고 일을 대하는 지혜가 부족했음도 인정한다. 남편은 변함없이 자기 일을 사랑한다. 다양한 분야를 시도한다고 해서 본업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 자기 분야에서 넓고 깊어지기 위해 새벽까지 공부하며 새롭게 도전하는 일이 자신을 통해 또 하나의 세계로 확장되길 바란다. 어떤 면에서는 타인의 인정보다 자기만족의 욕구가 더 커 보이는데 작곡가가 천직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남편에게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작중 ‘삶’을 ‘일’로 고쳐서. 어쩌면 현실적인 문제로 남편을 재촉할 때가 많은 내가 더 곱씹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 터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니

  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

  모든 것 한순간에 사라지나

  지나간 것 모두 소중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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