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보드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왁자지껄한 불금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 연락 올 데가 없는데 남편의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 위로 평상시 거의 통화하지 않는 A 음악감독의 이름이 떴다. 전화를 받은 남편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조용한 곳을 찾았다. 반갑지 않은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잠시 후 남편은 반쯤 얼빠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B 음악감독이 내가 자기를 욕하고 다닌다며 난리를 쳤다는데?” B는 남편이 7년 가까이 함께 일한 감독이었지만 관계를 정리한 지 2년이 넘었다. 한밤의 통화는 몇 년 전의 ‘사건’을 소환했다.
남편이 어느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을 완성해 막 보낸 참이었는데 B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작사 측에서 작곡에 감독의 이름이 올라가길 바란다는 얘기였다. B가 난처해하는 것 같아 남편은 처음으로 공동 작곡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사실 B는 작곡하지 않는 음악감독이었다. 그는 프로젝트를 따와 일감을 나눠주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일감을 가져오는 건 중요한 능력이었기 때문에 남편은 그 방식을 존중했다. 무엇보다 그동안 작곡가의 권리를 침해한 적이 없었으므로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당시 남편은 공동 작곡으로 이름을 올리는 일이 일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한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두 번째 곡도 같은 이유로 B의 이름이 들어갔다. 다만 이번에는 사후 통보였다. 남편은 처음 겪는 일에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 골치가 아팠다. 남편은 세 번째 노래 곡의 파일을 보내며 ‘작곡/작사’에 자기 이름 석 자를 적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 귀여운 노력이었지만 나름의 강구를 한 셈이다. 하지만 어찌 될 일인지 최종 크레딧에는 B의 이름이 있었다. 이번에는 사후 통보조차 없었다. 극장 스크린에서 처음 알게 됐을 때의 착잡함이라니, 남편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B는 자신의 행동을 이미 예고했던 것 같다. 그쯤 그는 이상한 얘기를 자주 흘렸다. 자신과 같은 감독이 없다는 둥, 공동 작곡으로 감독 이름을 올리는 일이 업계 관행이라는 둥 이해할 수 없는 얘기였다. “네가 아직 어려서 업계를 잘 몰라.”라는 말이 자매품처럼 따라왔다. 그러면서 B는 명절이나 생일이면 비싼 선물을 살뜰하게 챙겼다. 그의 이런 노력과 달리 남편의 신뢰는 점점 깨졌다. 창작자로서의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일하지 않은 지 꽤 됐지만 남편은 자신의 저작권을 되찾길 바란다. B에게 직접 요구한 적도 있고 상담을 받은 적도 있지만 현실은 마음 같지 않다. 요즘도 B가 직접 작곡하지 않는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공동 작곡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곡은 계속 늘고 있다. 금요일 밤 우리가 즐긴 보드게임 ‘달무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Life is unfai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