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노래를 만들며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한 우리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by 디어진저

이른 아침, 고양이 토리가 보채는 소리에 일어난 나는 비몽사몽인 채로 집안을 어슬렁댔다. 눈은 떠지지 않는데 더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피곤하고 졸렸지만 무엇보다 허전했다. 헛헛한 감정이 나를 휘젓고 있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난밤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서 꺼내 마신 맥주캔이 싱크대 위에 그대로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남편에게 속삭였다, 집에 도착하면 맥주를 마실 거라고. 집순이인 나는 장시간 외출에서 돌아오면 보통은 욕실로 달려간다. 따뜻한 물로 긴장감을 풀어야 좀 살 것 같으니까. 그런데 지난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이지 현관문을 열자마자 외투와 가방을 되는대로 던져놓고 냉장고로 직행했다. 벌컥벌컥. 목이 따갑고 차가워 두어 모금 들이켰을 뿐이지만 그제야 종일 시달렸던 갈증이 가시는 듯했다. “캬하. 이 맛이지.” 나는 싱크대 앞에 부동인 채로 맥주캔을 들고 탄성을 질렀다. 그런 아내의 기분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건지, 웬일로 남편이 먼저 욕실로 향한다. “나는 씻고 나서 마실래.”


누군가에게는 일상일지 모르는 귀가 후 맥주 한 캔. 나에게는 드문 일이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이 넘었고 꽃샘추위가 있던 날이라 평소라면 남편에게 욕실을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시콜콜 따지고 재는 일이 많은 보통날의 나였다면 쏟아지는 졸음과 타는 듯한 갈증을 따뜻한 샤워와 정수 한 컵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런데 금요일도 아닌 월요일 늦은 밤 맥주라니! 맥주로 해결할 수 없는 가짜 해갈인 걸 알고 있었지만 물로도 채울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백만 원만 보태면 둘이서 유럽 여행을 보름은 다녀오겠다.”

요즘 우리 부부 사이에서 자주 오가는 농담이다. 자조에 가까운 현실 인식이기도 했다. 남편이 4월에 발표할 노래 곡을 준비하며 실제로 그만큼의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녹음 일정을 잡느라 여기저기 전화하는 사이 ‘인친’들의 스토리에는 실시간으로 해외여행 사진이 올라왔다. 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따뜻한 동남아와 지중해에서 즐기는 사람도 있었고 가까운 일본으로 여행을 가거나 한국보다 더 춥다는 뉴욕의 겨울 낭만을 즐기러 떠나기도 했다. 헛웃음이 나기도 했고 솔직히 부러웠다. 나와 남편은 우리가 왜 이러고 있는지, 우리의 이성으로는, 그러니까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 생각보다 자주 헛웃음을 쳤다.


남편은 유명 가수도 아니고 그동안 가요계에서 활동한 작곡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속사와 계약해 의뢰받은 작업도 아니었다. 남편은 십수 년 동안 영상음악계에서 잔뼈 굵도록 일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 이름을 걸고 노래 곡을 발표한들 가족과 주변인을 제외하고 누가 들어줄까? 어떻게 아냐고? 작년 가을, 첫 번째 음원을 냈고 이번이 두 번째이기 때문이다. 그때도 수백만 원을 들이며 “이렇게 해봤으면 됐지. 다음에는 이렇게까지 하지 말자.” 남편은 나에게 미안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을 더 들인다. 지난번에는 스튜디오에서 기타와 보컬만 녹음했는데 이번에는 아코디언과 14인조 스트링을 녹음했다. 기타 세션도 당연히 빠지지 않는다. 돈을 아끼고 싶었지만 노래 장르와 분위기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음악적 욕심이라면 한껏 부린 셈이고 돈지랄에 가까운 무모한 도전이기도 하다.



어제 스튜디오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엔지니어 형이 웃으며 안부를 건넨다. “로또에 당첨됐어?” 남편과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와~ 그러면 정말 좋겠어요.” 대화를 어떻게 이어갈지 잠시 고민하다 내가 말을 꺼냈다. “남편이 만든 지 꽤 오래된 곡이에요. 우리가 가진 가장 이쁘고 좋은 것으로 잘 포장해서 보내주려고요.” 뒤이어 남편이 말을 잇는다. “이걸 보내야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리가 어떤 마음인지 이해한 것인지 응원인지 모르겠으나 엔지니어 형의 말투가 한결 차분해졌다. “그거 좋지.”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남편은 ‘110만 원짜리 소리’를 쇼핑하러 가는 거라며 나에게 농담을 던졌다. 녹음실 대여비와 엔지니어 등의 부대비용은 별개이다. 그 돈으로 남편에게 할애된 시간은 딱 한 시간. 한 곡을 녹음하기 위해 스트링 팀을 부르기는 예산상 불가능했고 스튜디오에 녹음 일정이 있는 날, 아는 엔지니어의 도움으로 여러 곡 사이에 남편의 노래를 끼워 넣었다. ‘내돈내산’이지만 ‘지인 찬스’가 아니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일이다. 그동안 드라마를 위해 작곡하며 수십 번도 더 했던 스트링 녹음이지만 남편은 노래 곡 하나를 위해 더 긴장하는 듯했다. 주로 같이 일했던 스트링 팀이 아니기도 했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앞 순서의 녹음이 20분 가까이 지체됐다. 연주자들이 쉬는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에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게 시작할 수 있었다. 녹음실에서는 녹음 부스 안의 연주자들과 토크백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녹음을 하는 동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우선 녹음을 시작하면 연주자들은 예민해지기 마련이고 녹음과 잠시 멈춤 사이에 디렉터와 악장은 서로의 의견을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껏 집중하는 데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이 스튜디오에 가득했다. 빡빡한 녹음 일정에 쫓기는 시간이 긴장감을 더했다. 남편은 대형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선율에 온몸을 맡기며 디렉팅에 집중했고 나는 뒷자리에서 핸드폰을 들고 조용히 촬영했다. 남는 건 사진과 영상뿐이지 않던가. 어느 부분이 어떻게 필요한지 모르니 나는 팔이 저리도록 한 시간 가까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한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다. 방금 전 우리가 복도에서 대기하던 30분보다 짧게 느껴졌다. 남편도 나도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있는 듯했다. 우리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이었지만 어떤 감상을 나눌 여유도 없이 테이블 위 악보와 짐을 정리했다. 복도에는 다음 녹음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멜로망스! 아, 우리 다음 팀은 그 유명한 멜로망스였다. 기분이 묘했다. 같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같은 스트링 팀과 같은 녹음실에 녹음했다 하더라도 음원 사이트에 릴리스 됐을 때 서로 다른 운명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정리하느라 분주한 사이 스트링 팀의 악장님이 행정 절차를 상의하며 한마디 하신다. “제작자, 작편곡자, 스트링 편곡자, 디렉터에 한 사람의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는 1년에 한 번 정도 있을까 한데.” 뼈가 있는 얘기였다. 얼핏 다재다능하다는 칭찬으로 들릴 수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재능이 없으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특히나 스트링 편곡은 남편이 드라마 쪽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누군가에게 맡길 필요가 없을 만큼 훌륭한 실력을 갖추게 됐다. 다만 업계 특성상, 상업적인 음악일수록 분야별 전문 인력이 붙게 마련이다. 필요경비는 당연히 회사에서 지출하고. 그런데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혼자 했다는 건 그다지 상업적이지 않다거나 ‘초짜’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정말이지 로또 당첨에 가까운 일이다.


남편은 누구보다 자신의 무모함을 잘 안다. 음악인으로 십수 년을 버텼기 때문에 객관적 인식이 확실한 편이다. 그래서 동종업계 사람에게 개인 음원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꺼낼 때면 쑥스러워한다. 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그동안 유명 드라마에 참여해 커리어를 만들었지만 자기 이름으로 음원을 내는 일은 이제 겨우 두 번째인걸. 그런 고민을 털어놓는 남편에게 위로를 건넸다. “대기업에 다닌 던 사람이 1인 창업을 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연하지.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게다가 드라마 일을 그만둔 것도 아니니 얼마나 감사해.”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다. 이런 쪽으로 나는 남편과 쿵짝이 잘 맞는다.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하며 기름을 아끼지 않는다. 매달 생활비와 노후를 걱정하는 속물 아내이면서도 남편이 창작하는 데서는 돈 걱정, 사람 눈치 안 보길 간절히 바라는 이중인격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소유보다 경험을 우선시하며 살았다. 돈을 쓴다면 비싼 물건을 들이기보다는 이왕이면 다양한 경험을 선택하고 싶었고 여행은 언제나 중요한 가치였다. 하지만 창작과 여행을 하나의 선택지에 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둘 다 ‘경험’이라는 동일 카테고리에 넣는다면 우리에게는 창작이 첫 번째 페이지인 셈이다. 음악인으로서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한참 흘러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늙었을 때, 우리가 갔던 멋진 여행지를 추억하는 게 행복할까, 함께 만든 노래를 듣는 게 행복할까? 나는 둘 다 행복할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우리 노래를 만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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