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사랑 고백

by 디어진저

밤 11시가 다 된 시간, 평소 10시에 길고양이 밥을 챙기러 현관문을 나서는데 오늘은 늦었다. 차가운 밤공기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나와 남편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 볼과 코끝이 차갑게 어는 듯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춥지 않고 오히려 상쾌하게도 느껴졌다. 아내의 이런저런 날씨 평가에 남편이 불쑥 옛일은 꺼낸다.

“새벽일 마치고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을 사다 줬는데 반응이 어찌나 시큰둥했는지,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


벌써 17년 전쯤의 일이다. 남편은 제대 후 새벽 시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잠시 했는데 겨울이 되면 그때 일을 자주 떠올린다. 경동시장의 그 사장님이 제때 월급을 주지 않았고 입에 거친 말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 대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주 레퍼토리다. 이십 대 초반의 가난한 청년에게 아파서 죽을 뻔했던 군인 시절과 생계형 아르바이트 경험은 겨울과 함께 그의 몸에 새겨졌다. 겨울이 되면 자동반사적으로 군대와 시장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간 것이다. 힘든 시절,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철부지 연인에 대한 서운함이랄까? 자신이 힘든 만큼 서운함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연애 초의 나는, 그리고 한참 후까지도 나는 시큰둥한, 아니, 거의 냉담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땐 그랬다. 지금처럼 잘 웃고 감동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표현하는 일에 서툰 사람이었다(지금도 그런 쪽으로는 부족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몇 푼 안 하는 맥모닝 세트가 당시 남편에게 쓰기 쉬운 돈이 아니었다는 걸 생각하면 더 미안해진다. 게다가 힘든 새벽 노동을 마치고 연인을 위해 준비한 아침 서프라이즈 아니던가? 지금 내가 떠올려도 민망할 정도로 나는 시큰둥했다.

갑작스러운 옛이야기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남편의 말이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못난 내 모습을 다른 사람이 언급하는 일은 언제나 부끄럽고 괴롭다. 그래서 그 부끄러움과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에 앞서 화를 낸다. 나는 그 대상이 남편이라면 더더욱 쉽게 그랬다. 게다가 그때의 나를 떠올리는 일은 언제나 나를 더 괴롭혔기 때문에 평상시 그 시절을 되도록 떠올리지 않는다. 하지만 맑은 날씨 덕분이었을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맞아. 그땐 그랬어. 그런데 기쁜 소식 하나 알려줄까? 그때보다 지금 당신을 훨씬, 훨씬, 훨씬 더 많이 사랑해. 당신도 알고 있지?”


어쩌면 남편과 나 사이에 그 정도의 부끄러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만큼의 신뢰가, 우리가 함께 한 시간만큼 쌓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남편의 뺨을 가볍게 쓸었다. 그리고 진심이라는 듯, 진심이었으므로 남편을 지긋이 바라봤다. 남편은 걸음을 옮기면서 흘깃 나를 보며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남편의 팔짱을 끼며 보폭을 맞췄다. 우리의 발걸음은 경쾌했고 내 마음은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했다. 오늘 밤은 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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