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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어진저 Nov 06. 2024

어떤 이별

펫로스 증후군

  “언니, 지금 저희 집에 가줄 수 있어요?”     

 

  집에 머물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들던 찬란한 봄날 오후, 나는 남편과 풍경이 근사한 근교의 카페로 달렸다. 오랜만의 드라이브였다. 출발한 지 20분 정도 됐을까. 그녀가 보낸 카톡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반려묘 두 마리를 키우는 그녀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우리는 고양이 집사로 이루어진 단톡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고양이 두 마리라고 했지만, 신부전을 앓던 고양이 ‘보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이제 막 일 년이 넘었다. 그녀에게는 고양이 ‘콩’이만 남았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단톡방이 수런거려 나는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깼다. 콩이가 혈변과 함께 개구호흡을 해 입원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고양이는 아픈 티를 잘 내지 않는다. 집사가 알아차렸을 때는 대부분 상태가 심각하다). 두 달 전 건강검진에서 콩이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녀는 작년 보리를 보내며 신세를 지기도 했고 최근 단톡방의 어느 집사가 갑작스레 반려묘를 떠나보낸 참이라 차마 슬픔을 더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준비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다들 그녀를 위로하면서도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믿었다. 급박한 새벽이 지나자 단톡방은 부족한 잠을 자듯 다시 조용해졌다. 이튿날 나는 그녀에게 따로 연락했다.     

 

 “잠은 좀 자고 출근했어요? 필요하면 오늘 내가 콩이랑 있을게요.”

  “어제는 일정을 바꿨는데 오늘까지 그럴 수 없어서 일단 출근했어요. 콩이가 병원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예민해요. 오늘은 혼자 쉬게 두고, 죄송하지만 내일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할게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언제든지 얘기해요.”

  “너무 죄송하고 고마워요. 보리 보낼 때도 언니한테 신세를 많이 져서 또 부탁드리기 너무 죄송해요. 그런 모습 보면 언니도 힘들 텐데…”

  “아니에요. 난 괜찮으니까 꼭 얘기해요. 보리 보낼 때 나는 도와줄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녀는 대학생 때 길고양이 두 마리를 차례로 집으로 들이며 집사가 됐다. 그중 한 녀석이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는데 그녀는 그걸 알면서도 거둔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 덕분에 그녀는 10년 가까이 매일 약을 먹이며 아픈 고양이를 돌봤다. 나는 그런 그녀가 대견하고 존경스러웠다. 출근해서 혼자 남겨진 고양이를 걱정하느라 몸이 다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내 도움으로 고양이의 수명이 늘어나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나도 그녀처럼 집에 돌아왔을 때 언제 떠난지도 모르게 차갑게 식어버린 콩이를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콩이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돕고 싶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언니, 카메라로 보는데 콩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꼼짝하지 않아요. 한 시간 가까이 된 것 같은데 집에 가줄 수 있어요?”

  “알았어요. 지금 밖인데 20분 정도면 도착해요.”     


  그녀에게 드라이브한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운전 중인 남편에게 돌아가자고 말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차를 돌리면서 투덜거렸다.     


  “얼마만의 드라이브인 줄 알아? 요즘 계속 바빴잖아. 꼭 이래야겠어?”

  “정말 미안한데 콩이가 화장실에서 안 움직인대. 빨리 가서 확인만 하고 다시 나오자. 응?”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이길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핀잔을 주면서도 차를 돌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야외로 향하던 들뜬 마음까지 돌리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남편은 자기 마음을 가장 먼저 헤아려주지 않는 아내에게 섭섭해 그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까지도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별일이 없기를 바라며 떨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방에 들어서니 ‘콩’이가 화장실 모래 위에 거꾸러져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콩이를 안아 올렸다.      


  “콩아, 아가! 이게 무슨 일이니.”     


  백사장 모래처럼 고운 화장실 모래가 감지 못한 눈과 벌어진 입, 그리고 콧구멍 속에 엉겨 붙어 있었다. 확장된 동공은 빛을 잃었지만 병원에서 CPR을 할 때 사용한 약물로 눈이 풀려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 콩이를 붙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아 올린 몸이 들어 올리는 대로 처지긴 했지만 온기가 느껴졌다. 그렇다. 콩이의 몸은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눈동자에 힘이 없고 숨만 쉬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급하게 담요 위에 눕혀 어떻게든 모래를 털어냈다. 벤토나이트로 만든 화장실 모래는 물을 만나면 끈적하게 들러붙으며 금방 돌덩이처럼 굳어버린다. 그 모래가 그 순간만큼 싫었던 적은 없었다. 콩이의 눈알에 엉겨 붙은 모래가 잘 털리지 않았다. 콧구멍도 모래로 가득 찼다. 이것 때문에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서 어떻게든 빼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입안에는 일부러 먹은 것처럼 모래가 가득했다. 고개 들기가 버거워 모래에 얼굴을 묻고 개구호흡을 했던 것 같다. 투두둑.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채 어떻게 해서라도 모래를 털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곁에 있던 남편에게는 콩이의 심장을 압박해 달라고 했다. 조금 전까지 아내에게 투덜거리던 남편은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는 찬란한 봄 따위는 잊은 채 당장 할 수 있는 걸 시도했다. 5월 말 한낮의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열린 창틈으로 들어왔다.     


  “아가, 너 이런 모습으로 가면 집사님이 속상해해. 얼른 일어나, 아가, 콩아! 너 인사도 안 하고 이렇게 가면 안 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사님, 지금 와야 할 것 같아요. 콩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 같아요.”

  “네? 정말요? 아, 어떻게 해… 지금 바로 갈게요.”     


  나는 차마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그 말을 전하기가 미안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나의 착각이고 뒤바뀔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고 생명은 그렇게 약하지 않으니까.     


  삐리릭. 철컥.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방에 가까워지자 그녀는 그제야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콩아, 누나 왔어. 미안해. 흑흑….”     


  아마 그녀는 급히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30층이나 올라오는 동안에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에 고양이 보리를 먼저 보냈지만 그것과 이것은 달랐다. 전혀 같을 수가 없었다. 놀람과 당혹스러움, 슬픔 등 온갖 감정이 뒤섞인 판단 보류의 시간이었겠지만 그녀가 콩이 앞에 도착한 순간 모든 게 분명해졌다. 콩이의 죽음이 덩그러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었다. 나와 남편은 거실로 물러났다. 그녀가 편히 울 수 있도록.     


  안타깝고 애절한 울음소리가 방에서 흘러나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울음이 진정됐을 때 나는 방으로 들어가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모래가 더 굳기 전에, 몸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따뜻한 물수건으로 콩이의 몸을 닦아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녀는 콩이 얼굴에 붙은 모래를 조심스레 떼어냈고 나는 주방을 들락이며 따뜻한 수건으로 오줌 묻은 콩이의 몸을 닦았다. 내 슬픔은 그녀의 것에 비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가 슬퍼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챙겼다. 우리는 거실에 있던 작은 유리 테이블을 방으로 옮겨와 그 위에 담요를 깔고 콩이를 뉘었다. 저녁이 되면 단톡방 집사들이 콩이와 작별 인사를 하러 올 것이었다. 장미가 흐드러진 뜨거운 봄이었다. 반려동물 화장터는 이틀 뒤에나 갈 수 있어서 담요 사이에 아이스팩을 여러 개 넣었다. 열린 창틈으로 후끈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에어컨을 켰다. 작년에 보리를 떠나보냈을 때 화장터에 가기 전에도 그렇게 했다며. 슬픈 일도 여러 번 겪으니 지혜가 쌓이나 보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기억해야 할 요령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원래 그런 건지 아이스팩과 에어컨 때문인지 가지런히 누운 콩이의 몸이 생각보다 빨리 차가워졌다. 그녀는 콩이의 눈을 감기려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나는 콩이의 발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새 발이 차가워졌네. 콩이 춥겠다. 양말이라도 신겨줬으면…”


  나도 반려묘 두 마리를 키우고 있던 터라 십수 년 키운 고양이 둘을 연달아 보낸 그녀가 안쓰러웠다. 이런 상황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평생 아팠던 첫 번째 반려묘가 정작 마지막 순간에 가까워지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보내지 못해 붙잡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지난 아픔을 떠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고 콩이가 힘들어하면 안락사를 선택하려고 했다. 하지만 집사의 이런 계획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콩이는 상태가 나빠진 지 이틀 만에 떠나버렸다. 나는 콩이가 병원을 정말 싫어한 것 같다고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남편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잠시 더 머물렀다.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단톡방에 부고를 알렸다. 그녀가 어느 정도 차분해지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저녁에 사람들이 오기 전에 잠깐 쉬는 게 좋겠다고 하며 돌아왔다. 그녀는 연신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도와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내가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텐데, 콩이한테 미안해요.”     


  그날 밤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나는 헤어지는 일도 싫고 죽는 건 더 싫다. 어린애처럼 영화나 만화도 판타지만 좋아하고 아무도 죽지 않는 결말이 항상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얕은꾀로 어떻게든 그 괴로움을 덜어내려 애썼다. 내 마음을 더 많이, 그리고 자주 표현하면 그날이 도둑처럼 찾아왔을 때 조금이라도 덜 슬프고 덜 괴롭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준비해도 이별은 준비할 수 없구나. 마음껏 사랑했다고 덜 아프지 않구나. 이별은 항상 느닷없고 사랑이 깊을수록 헤어짐은 아프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비겁해지지 않기로 작심했다. 걱정이 앞서 마음을 덜 주는 겁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덧없는 인생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내가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나이에도 내일 이별하는 사람처럼 오늘 맘껏 사랑하겠노라며 고집을 꺾지 않는지도.     



이별은 / 아무리 노력해도 / 준비할 수 없는 것

눈 뜨면 / 한바탕 꿈처럼 /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사랑한 매일과 이별한 그날이 / 어제와 내일 없이 / 오늘 내 안에 함께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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