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안의 딜레마: 책임은 있지만 보상은 없다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기분

by 힐링요트

최근 한 드라마에서 비행기 안에서 의료 행위를 한 의사가 환자 보호자로부터 소송을 당해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내 환자 사건으로 준비서면에 답변을 달고 재판에 참석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간의 무게는 가히 삶의 질을 바꿔 놓을 수 있을 만큼 무거웠다. 재판의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긴 시간 동안 가해지는 심리적 압박은 상당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교도소 담벼락을 걷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담 밖으로 떨어지면 세이프, 안으로 떨어지면 유죄. 진료 행위를 물론 함부로 하면 안 되겠지만, 우리는 항상 이런 부담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살아간다. 재판까지 가지 않더라도 경찰 조사를 받는 일은 비교적 흔하니까 말이다. 일단 불려 가서 조사받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자존감이 상하는 일이다.

나에게도 이 드라마와 같은 경험이 있었다. 결혼 1주년 기념 여행 때 일어난 일이었다. 설레는 기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이륙 후 2시간쯤, 갑자기 기내에 긴급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기내에 의사 선생님 계시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설 수 없었다. 반대로 혹시라도 내가 의사인 것을 들킬까 두려워 얼른 의자 속으로 온몸을 파묻어버렸다. 내 아내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의사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비행기 안을 둘러봤다. 성수기가 지난 터라 승객도 많지 않고 비행기도 작은 편이었다.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면 그 비행기 안에는 내가 유일한 의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때 내 마음속에서는 엄청난 갈등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무지무지 길게 느껴졌다. 마누라 앞에서 점점 더 작아지고 있었다. 젠장.

내가 읽은 정신치료 책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정신과 의사 10년 하고 나면 의사로서의 정체감이 흔들린다"고. 집에서도 나를 사실 의사로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는 분명했다. 감기약조차 처방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의사인가 하는 생각들 말이다.

집안에 감기 환자나 아픈 사람이 있어서 나를 쳐다보면, 나는 늘 "병원 가라"고 하거나 임상을 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을 부탁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상담은 하지만 일반적인 내과적·외과적 문제에 대해서는 의료 용어만 좀 더 많이 아는 일반인 수준과 비슷하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물론 정신과 환자라면 자신 있게 진료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의사 나오라고 하는데 나가자니 자신도 없었고, 혹시나 망신을 당하거나 엉뚱한 처치로 인해 책임을 지게 될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몰려왔다. 가만히 있자니 그래도 의사인 내가 숨죽이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진땀이 날 정도로 무지하게 긴 시간이었다.

그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무리 정신과 의사라도 일반인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일어섰다. 모든 승객이 다 나를 쳐다보는데, 마치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망신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결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마누라 앞에서 말이다.

환자를 보기도 전에 이미 손바닥에는 땀이 흘렀고, 덥지도 않은데 이마에는 진땀이 흘러내렸다. 화색이 돈 사람은 승무원들이었다.

환자는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하신 듯 손은 거칠고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주름이 잔뜩 진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일만 하시다가 외국 나들이를 하신다고 나름 잘 차려입고 얼굴에는 화장도 하셨지만, 매우 어색한 정장 차림의 초로의 여성이었다.

환자는 매우 창백하고 처져 있었으며, 반응성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비행기 응급키트를 가져다 혈압과 맥박을 측정했지만 잘 측정되지 않았다. 혈압이 매우 낮은 건지 아니면 혈압계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당시 비치되어 있던 혈압계와 청진기는 마치 장난감 정도의 조악한 수준이었다.

일단 CPR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환자 가족으로부터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지 상세하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할머니는 자녀들과 해외여행을 가시는 중이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골에서 새벽밥을 해 드시고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온 다음,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신 것이었다.

비행기 탈 때까지는 괜찮았지만 이후 점점 기운이 떨어지고 힘이 없으면서 주변 반응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평소 할머니가 앓고 있는 지병에 대해 물어봤더니, 당뇨를 앓고 계신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병력이 없었다.

그러자 뭔가 집히는 게 있었다.

"혹시 오시는 동안 멀미를 하지 않으셨나요?"

평소 여행을 하지 않으신 편이라 멀미를 심하게 하시면서 드신 것을 다 토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당뇨약을 드셨으니... 저혈당에 의한 쇼크가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비행기 응급키트에 수액이 있었지만 수액을 놓을 정도의 상황은 되지 않았다. 우선 기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설탕물을 드시도록 했다. 그리고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승무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환자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내가 도로 물었다. "환자 상태가 지금 심각하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지금 홍콩으로 응급착륙을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항로를 결정짓는 것은 기장님이 아니라 저군요?"

마누라가 들리게 큰 소리로 물었다. 승무원은 맞다고 확인해 줬다.

"목적지까지 그냥 가셔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목에 힘을 주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점차 환자는 조금씩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다가갈 무렵이 되어서는 상당 부분 회복해 모두 안심할 정도가 되었다. 승무원과 가족들도 얼굴이 밝아지고 긴장이 풀렸지만, 여전히 나는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승무원이 나에게 커다란 종이 양식을 내밀었다. 메디컬 리포트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저혈당 쇼크는 매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제때 제대로 진단이 이루어져 적절한 조치만 된다면 드라마틱한 회복으로 명의를 만들어 주는 병이기도 하다.

마누라의 경외의 눈빛을 한없이 느끼며 자신 있게 의학용어로 메디컬 리포트를 써내려 갔다. 마치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답을 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과가 꼭 좋을 수만은 없잖아. 만일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메디컬 리포트는 나의 잘못을 실토하는 반성문일 수도 있는 상황이야. 나에게 불리한 증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쓰면서도 하게 됐다.

## 영웅이 된 순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행기 안 모든 승객과 승무원이 나를 영웅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결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마누라 앞에서 말이다.

승무원이 와서 샴페인 한 병을 선물로 주고, 내릴 때는 보호자와 양쪽에 도열해서 감사 표시를 했다. 한껏 목에 힘이 들어가고 기분이 우쭐했다.

나중에 항공사로부터 감사장과 보상으로 12,500마일리지를 선물로 받았다.

## 씁쓸한 뒷맛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감사장까지는 괜찮았는데, 마일리지를 받는 순간 내가 한 수고와 리스크를 떠올리게 되었다.

5시간 40분 비행시간 중 4시간을 극심한 스트레스 속 초집중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혹자는 "당뇨성 저혈당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무슨 큰 일이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맞닥뜨렸을 때 얘기는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드라마처럼 나중에 시시비비를 법정에서 가려야 하는 일이 생긴다.

여행 갔다가 "의사 나오라" 해서 도와줬는데 결과가 안 좋아서 법정에 서서 내 잘못이 없다는 것을 어쩌면 수년이 될지 모르는 기간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삶의 질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는 내가 이미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 벌은 있는데 보상은 없다

그러다 보니 내과나 외과처럼 일반 진료에 능숙한 과도 아닌 정신과가 그 상황에서 나온다는 것도 매우 망설여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즐거워야 할 여행 시간에 나는 병원에서보다 몇 배의 압축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

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결과가 나쁠 때를 각오해야 했지만, 결과가 좋더라도 거기에 합당한 보상은 없다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벌은 있는데 보상은 없다.

## 히포크라테스를 들이대지 말라

나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제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의사들을 욕할 때 히포크라테스를 떠올리는데, 나는 그 말이 정말 듣기 싫다.

히포크라테스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조차 과연 그게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번 읽어 보고 그러는 건지,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말하는지 나는 상당히 의심스럽다.

입장이 바뀌어도 당신은 충분히 그럴 것이냐는 질문을 나는 정중히 묻고 싶을 때가 참 많다.

## 현실적인 해법을 찾자

"만약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 생기면 결국은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해야 할 질문은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절차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호와 보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더 현실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승무원이 의사를 찾는 데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이럴 때 의사가 어떻게 보호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얘기해주는 게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도 환자를 돕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것은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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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단순히 들이대는 것은 폭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윽박지름이 아니라, 보다 이성적이고 현명한 사회적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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